/삽화=이지혜 디자인기자
1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모든 기업은 이달 16일부터 직장내 괴롭힘을 예방하고 대응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고용부는 지난 2월 발표한 '직장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을 통해 각 사업장이 체계를 마련하는 걸 돕고 있다.
지위의 우위는 직접 지시하는 관계가 아니더라도 회사 내 직급, 직위상 우위성이 폭넓게 인정된다. 같은 직급이더라도 맡은 역할에 따라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뉠 수 있다. 관계의 우위는 나이·학벌·성별·출신 지역 등으로 다수 집단이 구성될 때 이들이 우위에 선 것으로 본다.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는 것은 △개인적 심부름 지시 반복 △근로계약서에 나온 업무와 무관한 지시 반복 △폭언과 욕설을 수반한 업무지시 △업무수행 과정에서의 의도적 무시·배제와 집단 따돌림 등이다. 다만 사내 휴게·운동시설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개별 근로자간 발생하는 사적 분쟁 등 업무와 관련 없는 갈등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되지 않는다.
2016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피해 진단항목과 일본·호주 등의 매뉴얼을 토대로 사례를 제시했다. 정당한 이유 없이 업무 능력이나 성과를 인정하지 않거나 조롱하고 훈련, 승진, 보상, 일상적인 대우에서 차별하는 것도 괴롭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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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근로자들과는 달리 특정 근로자에 대하여만 근로계약서 등에 명시되어 있지 않는 모두가 꺼리는 힘든 업무를 반복적으로 줘도 괴롭힘에 해당한다. 반대로 일을 거의 주지 않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유 없이 업무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제공이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시키고 휴가나 병가, 각종 복지혜택 등을 쓰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해서도 안된다. 다른 근로자들과는 달리 특정 근로자의 일하거나 휴식하는 모습만을 지나치게 감시하거나, 사적 심부름을 지속적으로 지시해도 안된다.
정당한 이유 없이 부서이동 또는 퇴사를 강요하고, 개인사에 대한 뒷담화나 소문을 퍼뜨리는 것도 괴롭힘이다. 신체적인 위협이나 폭력을 가하는 행위, 욕설이나 위협적인 말을 하는 것, 온오프라인 상에서 모욕감을 주는 언행을 해도 안된다. 의사와 상관없이 음주·흡연·회식 참여를 강요해도 안된다.
한 업체 임원은 육아휴직 후 복직한 직원에게 전에 담당하던 창구 수신업무가 아닌 창구 안내 및 총무 보조업무를 주고, 직원을 퇴출시키기 위한 따돌림을 지시했다.
이후 책상을 치우고 창구에 앉지 못하게 했으며, 그를 직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퇴사시켰다. 이러한 경우는 임원이라는 지위를 이용하고, 육아휴직 후 복귀한 직원을 동일 직무에 복귀시켜야 하는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했으며, 책상을 치우는 행위 등은 업무상 필요성이 없는 행위기 때문에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정된다.
선배가 후배에게 술자리를 마련하지 않으면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고 반복해 말하면서 "성과급의 30%는 선배를 접대하는 것", "술자리를 아직도 못잡은 사유서를 써와라" 등의 발언을 한 것도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정된다. 선배라는 우위를 이용해 사회통념상 납득하기 어려운 행위를 한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업무상 지시에 따른 사례는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 한 의류회사 디자인팀장은 조만간 있을 하계 신상품 발표회를 앞두고, 소속 팀원에게 새로운 제품 디자인 보고를 지시했다. 디자인 담당자가 수차례 시안을 보고했지만 신제품 콘셉트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완을 계속 요구했고 이로 인해 디자인 담당자는 업무량이 늘어나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하소연했다.
고용부는 이 경우 직속관리자라는 지위를 이용했지만 신제품의 디자인 향상을 위해 부서원에 대해 업무 독려 및 평가, 지시 등을 수차례 실시하는 정도의 행위는 업무상 필요성이 있다고 봤다. 그 양상이 사회통념에 반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다.
일반적인 인사상 불이익도 괴롭힘과는 거리가 멀다. 입사 동기 중 유일하게 승진하지 못한 한 업체 매니저가 낮은 실적에도 승진을 위해 필요한 A등급 인사고과를 받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은 사례는 괴롭힘이 아니라는 게 고용부의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