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93년 역사 빵집도, 4만명 건설사도 '휘청'…英이사회 태만 '홍역'

머니투데이 김성은 기자 2019.05.27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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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이사의 탈출구]4만여명 종사 건설사 카릴리언 청산 1년 만에 대형 빵집체인도 분식의혹…회계법인·이사회에 질타 거세

편집자주 사외이사는 주식회사 경영의 조력자이자 감시자임에도 거수기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법적책임에도 불구하고, 거수기 역할의 면죄부가 늘고 있다. 사외이사 제도를 무력화시키는 편법과 맹점을 들여다봤다.

/사진=블룸버그/사진=블룸버그


영국 런던의 '디저트 맛집'으로 종종 소개되던 파티세르 발레리(Patisserie Valerie)의 몰락은 한 순간이었다.

지난해 10월, 회사 측이 "중대한, 그리고 잠재적으로 사기의 가능성이 있는 회계 부정을 발견했다"고 밝힌 지 약 4개월 만인 올해 1월 말, 회사는 청산 수순을 밟았다. 사외이사, 감사 등이 포진한 이사회의 업무소홀과 무능이 주요 이유로 꼽혔고 특히 사외이사는 이사직을 맡는 기업수에 제한이 없어 업무 집중도도 떨어진다는 비난을 샀다.

BBC에 따르면 회사 회계상 9400만파운드(1417억원)가 과대 계상됐고 보유 현금이 5400만파운드나 부풀려져 기록된 게 문제였다. 회계상 과대 계상 금액은 당초 4000만파운드로 알려졌었으나 청산인으로 선정된 KPMG의 조사 결과 2배 넘게 늘어났다.



자산을 평가한 방식에 있어서도 실제와 2300만파운드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의 재무이사를 지냈던 크리스 마쉬는 사기 혐의로 체포됐다 보석으로 풀려났는데 현재 영국 중대사기수사국(Serious Fraud Office)의 조사를 받고 있다.

파티세르 발레리는 1926년 영국 런던 소호에 문을 연 베이커리다. 청산 직전까지 영국 전역에 200여개의 점포를 갖고 있었고 임직원 수는 3000명에 달했다. 2014년 증시에 상장해 한 때 기업가치가 4억4000만파운드(6661억원)에 달했다. 청산을 거치면서 파티세르 발레리는 한 사모펀드에 매각됐는데 100개 남짓의 점포가 생존했고 약 2000명의 직원들은 해고를 면했다.



당장 이 회사의 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 그랜트 손튼(Grant Thornton)의 부실감사가 국회의원들의 질타를 받았고 경영진의 탐욕, 허점을 발견치 못한 이사회의 무능 혹은 태만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는 지난해 초, 전세계 약 4만3000명을 고용 중이던 영국의 대형 건설기업 카릴리언(carillion)이 갑작스런 강제 청산에 돌입한 지 1년 만에 벌어진 일이어서 충격은 더 컸다. 카릴리언도 청산 직전 은행에 보유 자산이 3000만파운드 밖에 없었던 데 비해 부채는 약 15억파운드에 달했다. 회계법인도 문제였지만 이사진이 생존 가능성이 없는 회사의 주요 리스크를 적절히 관리하지 못했다는 비난들이 제기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카릴리언의 필립 그린 이사회 의장은 전직 영국 총리의 기업책임에 관한 자문역을 지낼 정도로 이사회 멤버들은 서류상 자격이 충분해 보였다"면서도 "이사회는 부채 증대를 중단하지 못했고 현금 출혈이 발생해도 배당을 계속했으며 핵심 성과목표에서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어도 핵심 경영진에 보너스를 지급하는데 사인하는 등 수년에 걸쳐 교과서적 함정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영국의 금융정보 잡지 '머니위크'는 "지난 10~15년간 한 회사의 사외이사에게 요구되는 자원 투입 역량은 커졌지만 기업 지배구조 규정에 따르면 한 사외이사가 다루는 기업 수엔 제한이 없다"며 "사외이사들의 시간 부족이 문제"라고 분석했다.

이어 "현안이 복잡한 회사의 경우 매달 회의를 열어야 하지만 많은 경우 그렇지 않다"며 "(경영진의 입김이 닿지 않는)독립적인 이사회 멤버를 모으기 위한 지명 위원회 역시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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