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컬레이터 다시 두 줄로 섭시다"[日산지석]

머니투데이 김주동 기자 2019.05.26 13:00
글자크기


철도사들 2010년부터 '두줄' 캠페인해도
1967년 시작된 '한줄' 문화 바꾸지 못해
에스컬레이터 사고 피해자 60%, 고령자
"호황기 강자의 논리 반영된 문화" 비판
안전·수송인원 등서 두 줄 서기 강점도

편집자주 타산지석, 남의 산에 있는 돌이 내 옥을 다듬는 데 도움될 수 있다는 뜻. 고령화 등 문제를 앞서 겪고 있는 일본 사회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배울 점, 경계할 점을 살펴봅니다.

/사진=트위터/사진=트위터


"에스컬레이터 다시 두 줄로 섭시다"[日산지석]
한국에서 지난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에스컬레이터 한 줄 서기' 운동이 있었습니다. 해외 사례를 들어 이 방식이 효율적이라는 주장이었는데요. 많은 이들이 공감하며 이 문화는 빠르게 자리잡았습니다. 안전을 이유로 다시 두 줄 서기를 하자는 캠페인이 2007년부터 8년간 정부 차원에서 진행됐지만 실패로 끝났습니다.

일본도 에스컬레이터 문화가 우리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최근(23일) 산케이신문은 '에스컬레이터 한줄 서기 왜 못막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두 줄 서기 캠페인을 벌여도 좀처럼 대중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주내용입니다. 그런데 한국보다는 고민의 깊이가 더해 보입니다. 그 이유는 일본이 초고령사회(65세이상 인구 비율 20%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에스컬레이터 한줄 서기가 시작된 것은 1967년 오사카의 한 기차역으로, 이후 "선진국인 영국을 본 받자"며 전국으로 확산됐습니다. 영국은 2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던 1940년경 한줄 서기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전쟁 때여서 사회 전체적으로 효율성이 중요시됐던 게 그 배경으로 꼽힙니다.

/사진=pixabay/사진=pixabay
효율성을 이유로 에스컬레이터 한줄 서기를 정착시킨 일본이 다시 두줄 서기로 되돌리려는 이유는 ①안전 ②진짜 효율성(?)입니다.



도쿄 소방청에 따르면 2011~2014년 사이 관할 구역 내 에스컬레이터 사고로 구급차가 출동한 건수는 이 기간 매년 증가했습니다. 2011년 1196명이던 사고자는 2014년에는 1443명으로 늘었습니다. 그런데 이중 65세 이상의 비율은 꾸준히 60%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대부분 사고의 원인은 손잡이를 잡지 않거나 걷는 등 안전하게 타지 않은 것입니다. 걷는 사람과 선 사람이 부딪히면서 사고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한번은 에스컬레이터를 걸어올라가던 사람이 서있던 중년 장애인의 지팡이를 건드리면서 이 장애인이 굴러떨어진 사례도 있습니다.

노인, 장애인은 균형 감각이 떨어지기 때문에 한줄 서기의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분명합니다. 몸의 오른편이 불편한 사람이 왼쪽을 비워야 한다면 서 있는 것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특히 걷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들어진 에스컬레이터는 긴 쪽의 폭이 1미터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걸으려면 타인의 안전을 위해서도 높은 조심성이 필요합니다.


안전 문제를 느낀 일본에서는 지난 2010년부터 전국 철도사업자들이 두줄 서기 캠페인을 매년 일정 기간 벌이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큰 효과가 없습니다. 에스컬레이터를 걸으면 확실히 더 빨리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효율성 면에서도 두 줄 서기가 낫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일본 철도사들이 진행한 '에스컬레이터 두줄 서기' 캠페인 포스터. 일본어뿐 아니라 영어, 한글도 있다.일본 철도사들이 진행한 '에스컬레이터 두줄 서기' 캠페인 포스터. 일본어뿐 아니라 영어, 한글도 있다.
몇몇 실험에 따르면 에스컬레이터 한 줄을 비워놓을 때보다 두 줄 서기일 때 30~50%가량 수송률이 좋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이동한다는 얘기입니다. 실제로 출퇴근 길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한 줄을 비우면서 서서 가려는 사람들이 긴 줄을 만든 모습을 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걷는 사람은 더 빨리 가는 대신 그만큼 서는 사람은 더 늦게 가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에스컬레이터 문화를 오래 연구해온 토키 쇼이치 에도가와대학 문화인류학 명예교수는 "한줄 서기를 받아들인 때는 일본경제의 버블기로, 효율을 중시하고 약자에 대한 배려가 적었던 시대"라면서 "강자의 논리가 최우선이었던 시기를 대표하는 문화 중 하나"라고 지난해 니혼게이자이신문을 통해 비판했습니다.

그는 "고령화 사회에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요구된다"고 두줄 서기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문화를 바꾸는 것은 사람들의 공감이 없으면 하기 어렵습니다. 두줄 서기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토키 교수 역시 단계적인 변화를 제안하면서 △쇼핑몰, 문화시설 등 서두를 필요가 없는 곳 △계단이 바로 옆에 있는 곳 등에 우선 적용하자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반대편 문화를 경험한 뒤 다시 사회적인 논의를 하자는 뜻입니다.

한국 사회도 고령자의 비율이 늘고 있습니다. 우리 문화 역시 과거엔 '빨리빨리'가 절대 대세였지만 이제 다양성을 받아들여가고 있습니다. 에스컬레이터 문화에 대한 일본 내 의견도 그래서 참고할 만해 보입니다. 같은 방향 에스컬레이터가 2대 이상인 곳에서 시험 삼아 두줄 서는 곳을 지정해 경험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