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죽거든 납골당 말고 합장을…" 그런데 누군지 모른다[日산지석]

머니투데이 김주동 기자 2019.05.12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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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묻히는 합장묘
오전 5시에 접수 마감될 만큼 '인기'
비용 저렴하고 관리비 없는 것 특징
독신 많고, 자식 있어도 "기대지 않아"

편집자주 타산지석, 남의 산에 있는 돌이 내 옥을 다듬는 데 도움될 수 있다는 뜻. 고령화 등 문제를 앞서 겪고 있는 일본 사회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배울 점, 경계할 점을 살펴봅니다.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나 죽거든 납골당 말고 합장을…" 그런데 누군지 모른다[日산지석]
"이제 갈 곳이 생겨서 한시름 놓았어요. 살아 있는 동안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하려고요."



일본 요미우리신문에 실린 한 73세 미혼 여성의 소감입니다. 이 여성은 막 합장묘 계약을 끝냈습니다. 동생이 한 명 있지만 자신의 사후 관리를 맡기는 폐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 인생의 마무리를 준비한다는 '종활'의 큰 숙제 하나를 마친 거지요.

한국의 장례문화는 고인을 화장 후 납골당에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요즘 일본에서는 지자체가 마련한 합장묘를 선택하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합장묘란 여러 시신을 함께 안치하는 건데, 가족묘가 아니기 때문에 서로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같이 묻히는 방식입니다.



아키타현 아키타시는 최근 이이지마의 묘지공원에 1500구의 유해를 모실 수 있는 합장묘 공사를 끝냈습니다. 시는 7월 희망자를 모집할 예정입니다. 집안에 유골이 있거나 이장할 사람들이 1차 대상입니다. 아마 이번에도 희망자가 많이 몰릴 것입니다.

일본 지바시가 운영하는 합장묘. /사진=지바시 홈페이지일본 지바시가 운영하는 합장묘. /사진=지바시 홈페이지
사실 아키타시는 지난해 평화공원이라는 다른 묘터에 합장묘(1500구)를 만들어 생전 예약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두 번에 나눠 접수를 받았는데 2차 접수는 오전 5시를 조금 넘겨 마감이 됐습니다. "새벽같이 왔는데…"라며 계약을 못한 사람들의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왔습니다.

지난 1월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대도시에서도 합장묘가 크게 늘고 있습니다. 도쿄도에서만 17만9000구, 요코하마가 4만1000구의 유골을 수용할 수 있고, 현재 공사가 진행중이거나 계획 중인 시설을 포함하면 2021년 일본 전국에서 43만구가 합장묘에 수용될 것이라고 신문은 보도했습니다.


합장하기 전 10~20년 동안 개별 안치하는 서비스도 나오는 등 합장묘의 모습은 발전하고 있습니다.

"자식에 부담 주고 싶지 않다"
합장묘의 특징은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관리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아키타시 합장묘의 가격은 1만7000엔(18만원), 땅 아래 묻히는 방식이어서 별도 관리비는 없습니다. 물론 가격은 지자체마다 달라서 10만엔(107만원)까지도 있습니다만, 일반 묘지나 납골당과 비교하면 낮은 가격입니다.

지난 3월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일본의 묘지 유형별 비용은 일반무덤 평균 154.2만엔(1654만원), 납골당은 94만엔(1008만원), 수목장 72.9만엔(782만원)이었습니다. 납골당은 연 관리비도 우리돈으로 수만원 이상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합장묘를 택하는 데는 비용과 함께 달라진 가족의 모습이 배경에 있습니다.

2015년 기준 일본의 연령별 인구 비율.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세대(1947~49년생)와 그 자식 세대의 비율이 크다. /사진=일본 국립 사회보장·인구문제 연구소2015년 기준 일본의 연령별 인구 비율.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세대(1947~49년생)와 그 자식 세대의 비율이 크다. /사진=일본 국립 사회보장·인구문제 연구소
이미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5%를 넘은 일본은 2040년 이 비율이 35% 정도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3명 중 1명이 넘습니다. 2040년 65세라면 지금의 40대중반 세대입니다. 일본 국립 사회보장·인구문제 연구소는 2040년 가구주가 65세 이상인 집 중에 1인가구는 40%에 달할 것으로 예측합니다.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이혼 또는 사별을 하고 혼자 살 고령자가 많다는 얘기입니다.

이미 많은 노인 세대들은 자식이 있어도 많지 않고, 이들과 혹시 있을 손자 세대에 자신의 사후 관리를 맡기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다이이치생명보험 경제연구소의 고타니미도리 연구원은 "지금의 많은 손자 세대는 조부모를 '가족'이 아닌 '친척'으로 느낀다"면서 "가족의 수직관계에 의지하지 않는 사람들도 늘어 자식이 있어도 합장묘 등 공동묘를 선택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요미우리신문을 통해 전망했습니다.

자식에게 부담 주지도 않고, 저렴하고, 관리를 신경쓸 필요도 없어 합장묘가 마음이 편한 겁니다.

역세권에 들어선 납골당, 함께 묻힐 동료 모임 '새로운 문화'
달라지는 장례 문화로 인해 전에 없던 모습도 나타났습니다. 한 70대 이혼 여성은 비영리단체가 운영하는 수목장과 계약했습니다. 이곳의 특징은 정기적으로 수목장 계약자들의 모임이 있다는 겁니다. 이 자리에서 같이 식사를 하면서 먼저 세상을 뜬 수목장 동료를 기리거나, 자신의 질병 등 고민을 얘기 나눕니다.

이 여성은 "무덤으로 이어진 인연이어서 병, 죽음 등 다른 사람들에게는 꺼내기 어려운 얘기를 편히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일본 다카츠키시의 합장묘. /사진=시 홈페이지일본 다카츠키시의 합장묘. /사진=시 홈페이지
자식 세대 사이에서는 돌아가신 부모를 더 자주 보기 위해, 또는 경제적인 문제로 이장하는 사례가 늘어납니다. 후생노동성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이장 건수는 9만7000, 5년 전보다 2만건가량 증가했습니다. 산케이신문은 "기존 묘원들의 운영이 어려울 수 있다"는 관계자의 설명을 전했습니다.

보통 묘지가 있는 장소는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 이장을 통해 새로 묻히는 곳은 앞서 말한 합장묘 또는 도심의 납골당입니다. 요즘 일본에서는 '지하철역 도보 3분 거리' 등 접근성을 내세운 도심 납골당 빌딩이 등장했습니다. 물론 찾아오기 쉽다는 것이 최대 장점입니다.

지난 3월 한국 통계청은 올해가 인구 자연감소의 시작이라고 밝혔습니다. 저출산 고령화 속도가 빨라 고령자 비율이 일본을 추월한다는 전망도 나왔습니다. 최근 일본 장례문화의 변화는 이런 우리나라에도 시사점을 줍니다.

시라하세 다츠야 모모야마가쿠인대 교수는 합장묘의 인기 등 장례문화 변화에 대해 "비관적으로 볼 일이 아니라 무덤 선택의 폭이 늘어난 것"이라면서 "외관이 바뀌었더라도 가족을 정중히 모시려는 사람의 마음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아사히신문에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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