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사진=머니투데이
알딸딸한 느낌 탓일까? 의식하진 못하지만 내가 정부 세수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꽤 커. 2007년부터 내가 벌어온 세수만 10년 동안 28조원이 넘어. 2016년 기준으론 3조2000억원 가량이지. 매년 3% 가까이 늘고 있다고.
한 잔씩 하며 자세히 설명해줄게. 우선 맥주 얘기부터 좀 풀어볼까?
어려운 얘기부터 해보자. 우리나라 현행 주세율 과세체계는 종가세(從價稅) 방식이야. 단어 그대로 가격, 즉 주류 출고가를 기준으로 과세하지. '비싼 술엔 높은 세율을, 싼 술엔 낮은 세율을'이라는 세부담 형평성을 유지하는데 유리한 체계야.
숫자로 따져 볼까. 국내 맥주의 제조장 출고가(제조원가+판매관리비+예상이윤)를 과세표준으로 해. 여기에 72%의 단일 주세율과 교육세 30%를 부과하지. 또 부가가치세 10%가 따라붙어.
이 시각 인기 뉴스
예를 들어 과세표준이 1000원이면 세금은 1036원이야. 주류세 720원에 교육세 216원(주류세의 30%), 부가세 100원을 추가한 금액이지. 그럼 출고가격은 2036원이 되지.
물론 수입 맥주에도 같은 세금이 부과돼. 하지만 수입가 자체를 낮게 신고하면 과세표준이 낮아지지. 자연스레 최종 출고가격이 낮아지니 저렴한 가격에 각종 수입맥주를 맛볼 수 있게 된거야. 심지어 미국과 유럽에서 수입되는 맥주는 FTA(자유무역협정) 때문에 무관세야.
너희들이 즐겨 찾는 '4캔 1만원' 수입맥주도 이 덕분에 가능해. 공격적 마케팅 때문에 본국보다 우리나라에 수입된 맥주가 더 싼 경우도 종종 있어.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 수입맥주의 비중이 더 커지고 있어. 심기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대형마트·편의점의 수입맥주 점유율이 이미 50%를 넘어섰다고 하더라.
국내 맥주업체가 수입맥주를 적극 들여오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지. 국내 맥주업체가 수입하는 맥주가 수입맥주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0% 가량이니 엄청나지.
심지어는 국내 생산을 포기하고 세금에서 혜택을 보기 위해 국내 맥주업체가 해외에 공장을 세우고 맥주를 생산해서 역수입하는 일도 생겨. 공장을 늘려도 모자랄 판에 공장이 점점 사라지니 일자리 감소도 자연스런 수순이지.
결국 맛에 대한 판단은 소비자들이 내릴 몫이지만 국내 맥주시장이 외국자본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불만이 늘고 있어. 국내 맥주업계가 이런 체제에 가장 불만을 많이 제기해왔지. 주세 개편 논의가 시작된 계기이기도 하고.
#둘째 잔. 그래서 어떻게 바꾸려고?
당시 정부도 이런 생각에서 과세체계를 설계했고 지금과 같은 맥주 세상과 수입맥주 시장 개방에 대해선 대비하지 못한거야. 이젠 맥주의 세상이 왔어. 2017년 주류 총출고량 중 58.8%(추정)가 맥주였어. 2005년부터 2016년까지를 봐도 맥주가 주류시장에서 평균 57.4%의 점유율을 차지했지. 세상도 바뀌었으니 나도 좀 바뀌어야겠지?
사실 이 방안은 지난해 7월 조세연구원이 '맥주 과세체계 개선방안'을 주제로 연 공청회에서 제시되면서 주목받았어. 1969년 종가세가 자리잡은 뒤 50여년 만에 처음 개편이 시작된 것이라서 의미가 컸지.
하지만 업계 기대와 달리 바로 주세 개편이 이뤄지지는 않았어. 김동연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소비자 후생 측면도 봐야 한다"고 신중한 입장을 취하면서야. 용량단위로 세금을 매길 때 수입맥주 가격인상 등 물가상승으로 '퇴근길 맥주 한 잔' 로망이 사라질 우려도 제기됐지.
결국 기재부·국세청 국정감사에서 심기준 의원과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 등이 이 문제에 대해 지적했고, 기재부는 세율과 세율에 따른 파급효과 등에 대한 연구용역 결과를 가지고 올해 개정하겠다고 약속했어. 맥주는 물론 소주·위스키 등 증류주와 막걸리 등 탁주까지 대상도 확대했고.
#셋째 잔. 4캔 1만원, 진짜 없어져?
종량세 도입 얘기가 나오면서 가장 많이 회자됐던 말이 "수입맥주 4캔 1만원 사라진다"였어. 과세체계를 일원화 하면 수입맥주 가격 상승이 예상됐거든.
하지만 이는 일부 저가 수입맥주에 한정된 예측에서 비롯된 해프닝이야. 심 의원이 국세청에서 제출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로는 리터당 835원의 종량세를 적용했을 때 국산맥주는 363원이 저렴해지고 저가 수입맥주는 89원 가량이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어.
인상 폭이 크지 않은 만큼 수입맥주 업체들이 4캔 만원 프로모션을 지속할 여력이 있는데다 가격이 낮아지는 국산 맥주들도 이에 동참하면 오히려 4캔의 구성이 더욱 다채로워진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야. 관세가 매겨지는 중국 맥주(24%)와 일본 맥주(30%)의 경우엔 오히려 가격 인하 가능성도 있어서 일각에선 '6캔 만원' 시대가 올 거라는 말도 해.
그렇지만 생맥주는 500밀리리터(ml)를 기준으로 220원 정도의 가격 인상이 예상돼. 지금 잔 당 4000원에서 5000원 가량이니 실제 소비자 가격 변동 폭은 2~4% 수준이라 크지는 않아.
#넷째 잔, 맥주가 일자리 해법 될까…'일자리 맥주' 한 잔
'피맥'(피자+맥주)라는 새로운 문화를 이끌었던 수제맥주 기억해? 수제맥주를 만드는 업체 대부분이 중소기업이야. 현행 종가세가 이런 맥주 중소기업 성장의 족쇄라는 지적도 있어. 종가세가 수입과 국산의 가격 차이를 만들듯,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도 만들지.
앞서 설명했듯 제조 원가가 과세표준이기 때문에 원가가 높을수록 주세도 늘어. '규모의 경제' 실현이 어려운 중소업체은 제조원가가 높으니 같은 맥주를 만들어도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주세를 내야 하는 구조야. 실제 수제 캔 맥주는 소매점에서 500ml 기준 4000~5000원대로 판매되고 있어.
종가세 아래서 원가라도 남기려면 어쩔 수 없이 비싸지는 거야. 그래서 종량세 도입이 중소 맥주기업의 성장판을 열어 줄 거란 기대가 많아. 한국수제맥주협회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종량세 도입 시 수제 맥주 가격이 1000원 이상 낮아질 거라고 해. 그럼 수제 맥주 '4캔 만 원'도 도전해볼 만하지.
종량세 하에서는 설비투자에 대한 감가상각비용이나 임대료가 주세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지 않아. 소비자가격으로 전가되지 않으니 신규 설비투자의 동기 부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야. 또 수제맥주 제조는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특성이 있어. 공정이 자동화돼있지 않고 손이 많이 갈 수밖에 없지. 고용 창출 효과가 더 클 거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야. 그래서 오죽하면 심기준 의원이 주세개편을 "작지만 확실한 개혁"이라고 말했을까.
#다섯째 잔, 소주, 막걸리, 위스키는?
종량세가 도입되면 '서민 술'의 대명사 소주는 출고가 인상이 예상돼. 오히려 소주는 제조원가가 낮기 때문이야. 현재처럼 출고가 기준 종가세에서 알코올 1리터당 비율로 세금을 부과하면 세금이 인상될 가능성이 있어. 업계에서는 20도 소주를 기준으로 세금이 약 10% 오를 것으로 봐.
소주 가격 인상은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종량세로 전면 전환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해. 맥주산업에 숨통이 트일지 몰라도, 증류주를 생산하는 업계에 타격이 갈 가능성도 크니까. 소비층이 다른 소주와 위스키의 세부담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하는 문제도 있어. 위스키 등 고급주류쪽에 무게중심을 맞추면 종량세 수준이 예상보다도 더 오를 가능성도 있어.
와인과 위스키, 프리미엄 소주 등의 고급 주류의 경우에는 대체로 가격 인하가 예상돼. 숙성 등 제조 과정에 비용이 많이 들고 고급 병과 패키지 사용 등으로 원가가 높기 때문이야. 조세연구원에 따르면 종량세 전환시 알코올 도수 40도 기준 위스키 주세액은 72.44% 감소할 거라고 해.
#여섯째 잔. 추후 국회 논의 계획은
결국 내 몸에 손을 대는 일은 국회에서 이뤄져야 해. 난 엄연히 법이니까. 조세연구원 연구결과가 발표된다고 해서 바로 바뀌는 것은 아니야. 연구 결과일 뿐이니까.
기재부가 올해 개정을 약속했으니 내년도 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7월쯤 나도 정부안으로 국회에 제출될 거야. 그럼 기재위 조세소위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하게 되겠지. 이미 권성동 한국당 의원이 작년 주세법 논의 당시 발의한 개정안이 계류돼 있긴 하지만, 이건 맥주에 한정한 법안이라 병합해서 논의하게 될 테고.
논의 과정이 험난할 수도 있어. 앞서 말했듯 주종별로 이해관계가 너무 갈리기 때문이야. 여기에 안동소주와 같이 각 지방별로 특산 주류도 있어 이해관계가 충돌할 경우엔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