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 결과가 좋았다면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아시아나항공의 운명은 달랐을 것이다.
그렇지만 가정은 가정일 뿐이다. 지난 5일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시가총액은 7388억원이다. 저비용항공사(LCC)인 제주항공의 시가총액 1조174억원에 못 미친다.
삼일회계법인이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감사의견을 ‘한정’으로 제시하면서 아시아나항공의 유동성 위기가 부각됐지만 어느날 갑자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멀게는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사들일 때부터 가깝게는 금호그룹 재건과정에 이르기까지 아시아나항공이 그룹의 ‘화수분’ 역할을 하다 돈이 마른 것이다.
박 전회장이 용퇴했지만 이는 문제해결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그가 물러난 것과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돈을 투입하는 건 별개 일이다. 아시아나항공이 1년 안에 갚아야 할 단기차입금이 1조3200억원인데 현금과 현금성 자산은 3분의1도 안 된다. 신용등급이 한 단계만 떨어지면 조기 상환해야 하는 금액도 1조4000억원이다. 자본확충이 절실하지만 모회사인 금호산업은 현금여력이 부족하다. 아시아나항공이 가진 아시아나IDT와 에어부산 지분을 팔아도 2000억원에 그친다. 다른 자산도 큰 도움이 못 된다. 요컨대 자산 매각과 구조조정 등 아시아나항공이 내놓을 수 있는 자구책으로는 스스로를 구할 수 없다.
최종적으로 ‘적정’ 감사의견을 받기는 했지만 시장에서 더이상 급전을 끌어다쓸 수도 없다. 박 전회장과 그 아들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의 금호고속 지분 등 사재로도 감당할 수 없다. ABS(자산유동화증권) 등 시장에서 빌린 차입금이 대부분이어서 과거처럼 채권단이 주도적으로 움직일 상황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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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항공사의 부도로 인한 혼란을 막는다는 차원에서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그 빚을 ‘공적자금’이나 ‘구제금융’이란 이름으로 대신 갚아주려면 명분이 필요하다. 게다가 강덕수 STX그룹 회장의 경영권은 박탈했으면서도 박 전회장이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등의 경영자로 복귀할 때 묵인했다고 비판받은 그 산업은행이 아니다.
지난 6일로 끝난 채권단과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개선약정 연장을 전후로 최 위원장과 이 회장이 박 전회장에게 보낸 메시지도 분명하다. 두 사람이 준 가이드라인은 “채권단을 납득시킬 자구안이 없다면 아시아나항공을 팔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금호’그룹을 지키려면 ‘금호아시아나’에서 ‘아시아나’를 떼어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