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최종구, 이동걸, 박삼구

머니투데이 강기택 금융부장 2019.04.1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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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과 욕심의 경계는 모호하다. 성공하면 야심이고 실패하면 욕심이 된다. 성패에 따라 인심도 변한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 결과가 좋았다면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아시아나항공의 운명은 달랐을 것이다.

그렇지만 가정은 가정일 뿐이다. 지난 5일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시가총액은 7388억원이다. 저비용항공사(LCC)인 제주항공의 시가총액 1조174억원에 못 미친다.



국적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가치가 이렇게 낮아진 건 대주주이자 CEO(최고경영자)였던 박 전회장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

삼일회계법인이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감사의견을 ‘한정’으로 제시하면서 아시아나항공의 유동성 위기가 부각됐지만 어느날 갑자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멀게는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사들일 때부터 가깝게는 금호그룹 재건과정에 이르기까지 아시아나항공이 그룹의 ‘화수분’ 역할을 하다 돈이 마른 것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아시아나항공에 대해 “어려움의 근본적인 배경은 지배구조 문제”라고 말한 것도 이런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줄곧 대주주의 책임과 결정을 언급한 것도 맥락이 다르지 않다.

박 전회장이 용퇴했지만 이는 문제해결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그가 물러난 것과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돈을 투입하는 건 별개 일이다. 아시아나항공이 1년 안에 갚아야 할 단기차입금이 1조3200억원인데 현금과 현금성 자산은 3분의1도 안 된다. 신용등급이 한 단계만 떨어지면 조기 상환해야 하는 금액도 1조4000억원이다. 자본확충이 절실하지만 모회사인 금호산업은 현금여력이 부족하다. 아시아나항공이 가진 아시아나IDT와 에어부산 지분을 팔아도 2000억원에 그친다. 다른 자산도 큰 도움이 못 된다. 요컨대 자산 매각과 구조조정 등 아시아나항공이 내놓을 수 있는 자구책으로는 스스로를 구할 수 없다.

최종적으로 ‘적정’ 감사의견을 받기는 했지만 시장에서 더이상 급전을 끌어다쓸 수도 없다. 박 전회장과 그 아들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의 금호고속 지분 등 사재로도 감당할 수 없다. ABS(자산유동화증권) 등 시장에서 빌린 차입금이 대부분이어서 과거처럼 채권단이 주도적으로 움직일 상황도 아니다.


국적항공사의 부도로 인한 혼란을 막는다는 차원에서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그 빚을 ‘공적자금’이나 ‘구제금융’이란 이름으로 대신 갚아주려면 명분이 필요하다. 게다가 강덕수 STX그룹 회장의 경영권은 박탈했으면서도 박 전회장이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등의 경영자로 복귀할 때 묵인했다고 비판받은 그 산업은행이 아니다.

지난 6일로 끝난 채권단과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개선약정 연장을 전후로 최 위원장과 이 회장이 박 전회장에게 보낸 메시지도 분명하다. 두 사람이 준 가이드라인은 “채권단을 납득시킬 자구안이 없다면 아시아나항공을 팔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금호’그룹을 지키려면 ‘금호아시아나’에서 ‘아시아나’를 떼어내라는 것이다.

[광화문]최종구, 이동걸, 박삼구


박 전회장이 아시아나항공을 포기할 순 없겠지만 애착과 집착은 구분해야 한다. 아시아나항공을 살리는 것과 아시아나항공을 갖는 것, 둘 다 할 수 없는 코너에 몰렸기 때문이다. 사실상 모든 방법이 막힌 박 전 회장의 선택은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한 달의 말미를 줬지만 야심과 욕심 사이가 또렷해진 지점에 그가 서 있다고 보는 금융당국과 채권단의 시선이 냉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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