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한국전력공사(한전)에 공급하는 전력선의 물량과 낙찰가를 담합했던 전선업체들이 공정거래위원회에 담합 사실을 알려 과징금을 면제받은 중소기업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내 승소했다. 이들 전선업체들은 담합을 이유로 지난해까지 한전에 687억원을 물어줬는데, 신고업체도 함께 담합에 참여했으니 공정위 과징금을 면제받은 것과는 별도로 한전에 대한 손해배상액을 함께 나눠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대한전선·LS 등, 답합 신고한 업체에 "함께 담합했으니 함께 배상하자"
이를 알게 된 한전은 지난 2012년 담합업체 중 10개 사업자를 선정해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담합업체들은 1심 판결이 나오기 전 한전에 지급할 손해배상액을 '관련 매출액 비율'에 따라 물어주기로 미리 합의했다. 대한전선과 엘에스가 각각 178억원, 가온전선이 96억을 물어주는 등 이들은 지난해까지 총 687억원을 한전에 배상했다.
담합업체들은 한전에 손해배상을 하고 난 뒤 함께 담합에 참여한 대일전선의 손해배상액까지 한전에 대신 물어줬으니 그만큼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대일전선은 자신은 한전에 대한 손해배상을 하지 않아도 된다며 분담액 20억원 중 6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에 대해선 지급을 거부했다. 그러자 담합업체들은 나머지 금액도 돌려달라며 소송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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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전선 등은 "대일전선을 비롯한 전력선 업체들은 한전에 대한 공동불법행위를 했고, 한전과의 소송에 따라 대한전선 등이 선고된 손해배상액을 나눠 내 대일전선을 면책시켰으니 그 금액을 지급하라"고 주장했다.
대일전선은 그러나 "공동불법행위자의 부담비율은 '관련 매출액 비율'보다 '각 사업자가 담합 형성과 유지에 한 역할'이 더 중요한 고려요소가 돼야 한다. 전력선 담합은 5개 대기업들이 주도했고 중소기업인 대일전선은 단순 가담에 불과해 그 비율이 더 낮게 산정돼야 한다"고 맞섰다.
특히 대일전선은 "1순위 자진신고자이고 공정위 조사에 협조해 담합행위가 밝혀지는 데 기여하는 등 부당공동행위에서 스스로 탈퇴해 불법행위가 종료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점 역시 부담부분 산정에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일 "답합 밝혀낸 사실 고려해야"…법원 "관련규정 없어"
그러나 법원은 대일전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손해를 직접 원인으로 가해자들이 이익을 취하는 '가치 이전형' 불법행위에도 과실이나 기여도를 우선 고려할 수는 없다"며 "각 사업자들이 얻은 이익은 부당공동행위 관련 매출액에 따라 정해지므로 내부적 부담부분 역시 관련 매출액 비율에 따라 산정되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리니언시제도를 이용한 업체라고 해서 손해배상액이 감경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자진신고 및 조사협조는 부당공동행위로 한전에 손해가 발생한 후의 사정으로 이미 발생한 손해에 어떤 영향을 준 것이 아니다"며 "대일전선은 리니언시업체 지위를 인정받아 공정위 과징금 등을 면제받았는데 현행법상으로는 행정상 부과처분 면제 외에 민사상 손해배상책임까지 감경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