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낳기 싫어도 지우진 말라"던 국회…어떤 답 낳을까

머니투데이 백지수 기자 2019.03.18 17:40
글자크기

[the300][낙태죄 위헌 vs. 합헌]법학 전문가들 "임신 12주 이내 여성 자기결정권 인정해야"…'낙태죄 폐지'에는 엇갈린 입장

편집자주 '낙태죄의 위헌' 여부가 이르면 이달 늦어도 내달 헌법재판소에서 결정난다. 천주교계를 비롯한 낙태죄 폐지 반대론자들은 태아의 생명권을 훼손하는 어떤 행위도 용인되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반면 국가인권위원회 등은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 재생산권 등을 위해 낙태죄는 폐지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양측의 목소리를 담았다.

2019년 기준 세계 낙태법 지도. 초록색이 독일·프랑스 등 특정 기간 이내 임부 요청만 있으면 조건 없이 낙태를 허용하는 국가다. 노란색은 일본 등 사회·경제적 이유까지 낙태 사유로 인정하는 국가다. 우리나라는 임부나 태아 등의 건강상 문제 등 제한적인 이유로만 낙태를 할 수 있는 주황색 국가다. /사진=비영리단체 'Center for Reproductive Rigts'가 만든 '세계 낙태법 지도(World Abortion Laws)' 캡처2019년 기준 세계 낙태법 지도. 초록색이 독일·프랑스 등 특정 기간 이내 임부 요청만 있으면 조건 없이 낙태를 허용하는 국가다. 노란색은 일본 등 사회·경제적 이유까지 낙태 사유로 인정하는 국가다. 우리나라는 임부나 태아 등의 건강상 문제 등 제한적인 이유로만 낙태를 할 수 있는 주황색 국가다. /사진=비영리단체 'Center for Reproductive Rigts'가 만든 '세계 낙태법 지도(World Abortion Laws)' 캡처


'낙태'를 형사처벌하는 것이 현실과 괴리됐단 지적이 잇따른다. 형법 낙태죄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가까워 온 가운데 사회적 논의를 할 '민의의 전당' 국회는 잠잠하다.

전문가들은 낙태죄 폐지 여부나 헌재 결정과 관계없이 임신 12주 이내 여성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인정하는 법 개정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1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문민정부가 들어선 14대 국회(1992~1996)부터 가장 최근인 20대 국회까지 낙태 범위를 구체화하거나 낙태죄 처벌 논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법안은 10건에 불과했다.

이 법안들은 주로 17대와 18대 국회에서 발의됐는데 회기 중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모두 임기만료 폐기됐다. 17대 국회 이전이나 최근인 19~20대 국회에서 낙태 범위에 대한 논의는 전무했다.



17~18대 국회에서 나온 법안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낙태에 대한 처벌 자체는 인정하는 내용을 담았다. 형법 낙태죄 조항은 그대로 두고 그 예외를 규정한 모자보건법 개정을 통해 낙태 규제를 강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임신한 여성 입장에선 "낳아 키울 형편이 안 돼도 일단 낳으라"고 볼 수 있던 것이 17~18대 국회에서 주된 시각이었다.

[MT리포트]"낳기 싫어도 지우진 말라"던 국회…어떤 답 낳을까
장애인의 출산권 보장 명목으로 낙태 허용 범위에서 장애인을 제외하는 법안이 대표적이다. 낙태를 위해 의료진의 상담과 다각적 소견을 의무적으로 요구하는 법안도 낙태 규제 강화법이었다. 의료진 등 전문가 소견이 있어도 임부 건강상 문제는 임신 20주 이내, 성범죄에 의한 임신은 9주 이내에만 낙태를 허용한 법안도 있었다.


국회가 현실과 괴리를 좁히려는 노력을 아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18대 국회 때 홍일표 한나라당 의원(현 자유한국당 의원)은 낙태죄 예외 사유에 '임신 12주 이내'에 한해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임신 중절을 추가했다. 사회·경제적 이유로도 낙태가 가능한 일본과 비슷한 방향이다.

대신 낙태 허용 기간을 태아의 골격 형성 전인 임신 12주 이전으로 제한했다. 미성년자는 친권자나 후견인 동의하에 낙태할 수 있게 한 조항도 추가했다.

낙태 금지를 강제하는 대신 비혼 출산을 유도한 법안도 있었다. 18대 국회 때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은 '낙태방지 및 출산지원에 관한 법안'을 제출했다. 임신한 여성에게 '희망출산제도'를 통해 해산(출산)급여 등 경제적 지원부터 심지어 입양까지 전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내용이다.

이후 국회 논의는 끊겼다. 하지만 국회 안팎의 법 개정 요구는 이어졌다. 지난해 11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23만여명이 낙태죄 폐지에 서명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5월 발간한 보고서 '낙태죄에 대한 외국 입법례와 시사점'에서 "강력한 낙태 규제가 위험한 방법으로 낙태하도록 내모는 형국"이라며 "기본권 보장 관점에서 태아의 생명권도 중요하지만 임부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에 대한 배려도 무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입법조사처는 임신 12주 이전 낙태는 처벌 않는 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 등의 사례를 언급하며 "고려해 볼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안전한 낙태를 위해 상담제도를 활성화하는 등 낙태 절차를 구체화하거나 낙태 장소나 시술자 등을 상세히 규정해 길을 여는 것이 여성 건강권에 더 도움될 것이라고도 제안했다.

법학자들도 '임신 12주'에 주목했다. 낙태 형사처벌 여부에는 입장이 갈렸지만 임신 초기에는 임부의 자기결정권도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공통된 시각이다.

낙태죄 유지를 주장한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다른 나라들도 낙태죄 자체는 인정하고 있다"면서도 "의료계가 말하는 태아 골격 형성 이전인 '12주'까지는 형사 처벌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도 "임신 12주까지는 태아 생명권보다 임부의 결정권이 더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낙태로 처벌하는 것은 폐지해야 한다"면서도 "대신 모자보건법에 태아 성장 시기별로 구체적인 낙태 시술 요건과 절차에 대한 규정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