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신용정보법 개정이 금융혁신의 주춧돌

머니투데이 김태훈 레이니스트 CEO 2019.03.15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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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정책이 1년 늦어지면 데이터 산업은 10년 이상 늦어질 수 있다”

필자는 지난달 13일에 열린 ‘신용정보법 개정안 관련 입법 공청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작년 11월 발의된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아직 국회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금융산업의 혁신을 위해서는 데이터 활용에서의 규제 개혁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일각에서는 신용정보법 개정안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고객의 정보 인권을 침해하고, 데이터를 독점하고 있는 대기업의 불공정과 독점을 강화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는 법안의 취지와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며, 사실과도 다르다. 신용정보법 개정안은 오히려 금융 영역에서 소비자의 권리와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법안이다.



개정안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철학은 금융사가 가지고 있었던 고객의 데이터 활용 전권을 고객에게 돌려주자는 것이다. 그동안 소비자는 자신의 데이터를 활용하고 싶어도 활용할 수 없었다. 이는 소비자가 원해도 데이터의 이전, 활용·관리·가공이 불가능했음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금융소비자들은 암암리에 여러 불편을 겪어 왔다. 클릭 한 번에 항공권이 최저가로 정렬되는 시대인데도, 유독 금융 영역에서는 자신에게 최적화된 금융상품을 탐색하고 구매하는 것이 극히 어려웠다. 스스로의 금융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조회하고 관리하는 것도 불편함이 컸다.



막혀 있었던 데이터가 흐르게 되면, 소비자의 권리와 능력이 증진된다는 것은 이미 데이터 환경이 갖춰진 해외에서 증명되고 있다. 고객의 신용정보를 신용평가사로부터 제공받아 활용하는 미국의 ‘크레딧카르마’라는 회사는 그 전까지 유료로 조회해야만 했던 신용정보를 8000만명 이상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또 신용도가 우수한 회원에게는 원래 냈어야 할 세금 중 평균 300만원 정도를 아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외에도 상품 선택권 강화, 정보 보안 강화, 금융생활 편의성 강화 등 소비자가 얻을 수 있는 이점들은 여러 해외 사례에서 증명됐다.

미래 먹거리가 될 데이터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 관점에서도 신용정보법 개정은 중요하다. IT 서비스는 국가의 경계가 없다. 유튜브·넷플릭스·페이스북·아마존 등 해외 서비스들이 한국은 물론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데이터 기반의 개인화된 플랫폼이라는 점이다.

금융 영역은 아직 전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서비스가 나오지 않았지만, 오새 각국의 움직임을 보면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영국·일본 등에서는 이미 금융 시스템을 외부에 개방하면서 혁신적인 핀테크 서비스들이 생겨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뒤쳐져 있다. 2017년 스위스 국제경영대학원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빅데이터 활용과 분석 수준은 조사대상 63개 나라 중 56위였다. 데이터가 없어서, 기술이 없어서가 아닌 관련 법 제도의 미비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김태훈 레이니스트 CEO/사진제공=레이니스트김태훈 레이니스트 CEO/사진제공=레이니스트


물론 데이터의 활용과 가공을 위해서는 철저한 개인정보 보호가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이 부분이 우려돼 법안 자체를 막는 것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다. 실제로 신용정보법 개정안은 신용정보의 이용만큼이나 보호에 초점을 두고 있다. 데이터 활용을 위한 강력한 기술적, 제도적 보호 장치의 의무화는 물론 데이터 이용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를 만들어 오·남용의 가능성을 줄였다.

규제를 변화시키고, 기존 산업의 틀을 바꾸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다.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는 당연하다. 하지만 데이터를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관점이다. 이제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논의를 넘어, 어떻게 데이터를 활용해 소비자의 혜택을 증진시킬 것인지, 금융 산업을 혁신할 것인지, 첨단 정보 데이터 산업 역량을 성장시킬 것인지 등 발전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 주춧돌이 될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조속히 국회에서 통과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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