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지혜 디자인기자
최지수씨(24·가명)는 최근 친한 동생에게 "이번에는 졸업을 안 한다"고 말하자 이 같은 말을 들었다. 그는 "많이 놀았으면 억울하지나 않겠다"며 "동생이 악의를 가지고 한 말이 아니라,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비참했다"고 털어놨다.
최씨는 대학생과 졸업생, 애매한 경계에 있는 '졸업유예생'이다. 이수 학점, 인턴쉽 등 졸업요건을 모두 충족했지만, 취업을 못해 졸업만 미뤘다. 한국 사회에서 '졸업을 유예했다'는 말은 곧 '취업·합격에 실패했다'는 뜻이다.
◇"후배 마주칠 때마다 죽고 싶은 기분"…마음 졸이는 졸업유예생
대학 취업률 현황./사진=교육부 고용알리미 캡처
또 '사람을 만나기 싫은 동시에 만나고 싶은 사람은 만날 수 없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한다. 학교 선후배·주변 어른 등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취업하지 못한 것을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아서다. 반대로 친한 친구들이 먼저 취직에 성공할 경우, 매번 만나자고 하기도 어렵다. 이모씨는 "후배를 마주칠 때마다 죽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며 "도서관을 몇 년 동안 못 떠나는 선배도 보기 싫었다"고 말했다.
졸업유예생들은 "'왜 졸업을 유예하는지' 설명할 때마다 피로감을 느낀다"며 "졸업 유예를 경험한 사람이 아니면 졸업 유예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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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졸업을 유예하고 있는 최모씨(24)도 "주변 어른께 졸업유예를 한다고 말씀드리면, '왜 굳이 졸업을 안하냐'고 물어보신다"라며 "졸업 유예를 내 의지로 하는 것도 아닌데, 상대를 매번 이해시켜야 될 때 어려움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유일하게 기댈 곳인 대학에서도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다. 졸업생이 일정 금액을 내야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것과 달리, 대부분의 대학은 졸업유예생의 도서관 출입을 허용하거나 취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 입장에선 돈을 받지 않고 취업준비생을 지원하는 셈이다.
◇기숙사 숙식·생활비 대출 끊기는데…아르바이트 못해 '생활고'
/사진=이미지투데이
4년 동안 살던 기숙사에서는 쫓겨난다. 기숙사에는 대학·대학원 재학생, 장학생 등만 살 수 있기 때문. 또 장학금 및 대출 제도의 도움을 받기도 힘들다. 소득 8분위 이하 재학생인 경우 한국장학재단에서 학기당 150만원까지 '생활비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정규학기에 장학금을 받았다면 졸업유예생은 불가능하다.
재학 시절 기숙사에 살았던 한모씨(25)는 "지방에 내려가서 취업 준비를 할 수는 없으니, 서울에서 방을 구해야 한다"라며 "졸업유예를 하면 숙식비가 3배 넘게 든다"고 말했다.
졸업유예생 정모씨(26)는 "대학 다닐 때는 학자금 대출뿐만 아니라 돈이 모자를 때마다 생활비 대출을 받았다"라며 "재학생 때와 동일하게 숙식비, 교재비, 교통비 등이 드는데, 무조건 알바를 많이 할 수도 없고 답답하다"고 고백했다.
김지경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학생 졸업유예 실태 및 지원 방안 연구'에서 "청년실업률의 상승과 고용여건이 개선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대학생들이 체감하는 졸업 후 삶에 대한 불안감은 생존에 대한 공포로까지 확장되고 있다"며 "학교 울타리 안에서 '공부 중'인 상태로 조금 더 머물고자 하는 정서가 졸업유예 학생 수를 증가시키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