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주최 '제3회 한국과학문학상'에서 장편 '기파'로 대상을 수상한 박해울 작가. 박 작가는 "매일 1시간씩 6년간 지하철에서 원고를 다듬었다"고 말했다. /사진=임성균 기자
심사위원단의 만장일치로 뽑힌 장편 대상작 ‘기파’는 “어디 하나 빠진 것 없는 균형의 결정체”(김창규) “글은 기술이 아닌 인격으로 쓴다는 걸 보여준 따뜻한 작품”(김보영) 등 찬사가 잇따랐다.
박해울 작가. /사진=임성균 기자
“영원한 선이나 악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정의를 좋아하지만 정의가 항상 승리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거든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로봇도 그런 가치나 철학의 문제에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소재였어요. 로봇과 인간의 대결이 아닌, 로봇을 이용하는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태도들 말이에요.”
박 작가는 이 작품에 6년을 매달렸다. 처음엔 단편으로 집필했던 습작이었는데, 주변에서 더 긴 이야기였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아 분량을 늘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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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수료 후 전기 차단과 밸브 만드는 중소기업에 취직한 그는 퇴근 지하철에서 다듬어지지 않은 글을 쓰고, 출근 지하철 플랫폼에서 본문의 글을 다듬는 작업에 몰두했다. 80매에서 800매로 늘리는 데 매일 1시간씩 6년의 시간을 지하철에서 보낸 셈이다.
장편 '기파'로 '제3회 한국과학문학상'에서 대상을 받은 박해울 작가. 박 작가는 난판된 우주선에서 의사 기파가 사람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숨겨진 진실을 통해 인간의 속성과 정의에 대한 문제를 파헤친다. /사진=임성균 기자
심사위원의 평가처럼 박 작가 작품에는 ‘인간적’인 따뜻함이 물씬 풍긴다. 특히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주목한다.
“고등학교 때 캄보디아로 해외봉사 가서 정미소를 문화센터로 만드는 작업을 그곳 친구들과 같이했는데, 알고 보니 그 친구들은 상위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정미소 밖 사람들이 더 필요한 존재들인데, 그들을 못 들어오게 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화려한 곳을 가면 이 화려함을 위해 힘들게 일한 사람들을 보게 되는 습관이 생긴 것 같아요.”
박해울 작가. /사진=임성균 기자
박 작가는 어쩌다 SF 작가가 된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SF에 미쳐 작가의 꿈을 꿨다고 했다. 과학동아로 시작해 내셔널지오그래픽을 거쳐 해리포터로 완성하는 SF에 대한 관심은 꾸준한 글쓰기로 이어졌고 SF의 현실적, 인문학적 고찰까지 투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전 SF가 마이너리티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예전 SF영화들은 잘 사는 과학자가 대개 주인공이고 외계인 침략에 맞서 싸우는 얘기가 많았죠. 하지만 앞으로 빈부격차가 더 심화하면서 현실적으로는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진 않아요. 신기술이 상용화하면 많은 사람이 그걸 이용할 테고, 더 많이 가진 자의 권력 문제가 새로운 이슈로 대두할 것 같아요. 그런 분위기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어떻게 느낄지가 제겐 관심사예요.”
그는 가난하게 살지 않았지만, 그의 시야는 가난한 이들의 반경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