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거리로 내몰린 아기들, 대답없는 정부

머니투데이 박보희 , 안채원 인턴 기자 2018.11.2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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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축복과 절망 사이] ① '베이비박스 10년' 유엔으로 간 논란…"아이 키울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야"

편집자주 저출산이 전국가적 문제로 떠오른 지금도 거리로 내몰리는 아기들이 있다. 베이비박스가 국내에서 첫 문을 연지 올해로 10년째, 베이비박스의 존폐 여부에 논란이 머물러 있는 사이 여전히 한해 200여명의 아기들이 이곳을 찾는다. 부모들이 아기를 안고 이곳을 찾는 이유는 '아기를 키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베이비박스의 법적 논란을 넘어 근본적인 해답을 찾아야 할 때다.

[MT리포트] 거리로 내몰린 아기들, 대답없는 정부


"영아 유기를 조장한다." vs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다."

2009년 서울 관악구에 국내 최초의 '베이비박스'가 생긴 이후 10년이 흘렀지만 이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유엔(UN)은 세계 각국에 베이비박스를 없애라고 권고하고 있다. 베이비박스 역시 영아 유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다.

지난 1일엔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 베이비박스 등 한국의 아동 유기 상황을 담은 시민사회 연대 보고서가 제출됐다. 4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이뤄진 한국 비영리단체(NPO) 연대가 작성했다. 보고서는 "한국에선 매년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 200~300명이 발견되는데, 민간의 베이비박스가 아동보호의 대안이 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빈자리를 민간이 메우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베이비박스 문제에 손을 놓고 있는 동안에도 매년 200여명의 아기들이 저마다 사연을 안고 베이비박스를 찾아온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베이비박스는 관악구와 경기도 군포 2곳. 주사랑공동체가 운영하는 관악구 베이비박스의 경우 아기가 들어오면 즉시 경찰에 통보된다. 이후 아기는 담당구청을 거쳐 서울시 아동복지센터로 보내진다. 서울시 아동복지센터는 입양이나 가정위탁, 보육시설 등 상황에 따라 맞는 곳으로 아기를 보낸다. 하지만 출생신고조차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많아 대부분의 아기들은 보육시설에 맡겨진다. 이렇게 서울시 아동복지센터를 거친 아기만 올들어 9월 기준으로 142명에 달했다.

그러나 현행법상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맡기는 것은 아동 유기에 해당한다. 민간 단체가 운영하는 베이비박스는 정부의 인정을 받은 공식적인 아동보호 단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형법 제272조는 직계존속이 치욕을 은폐하기 위해, 양육할 수 없을 때, 이밖에 다른 이유로 영아를 유기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들의 부모를 찾아줄지는 여부는 경찰의 판단에 달렸다. 관악구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주사랑공동체 관계자는 "길거리에 버리는 등 아이의 생명을 위험하게 하는 유기는 처벌하지만, 아동 보호 차원에서 유기를 하는 경우 경찰 수사가 들어가지는 않는 것으로 안다"며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처벌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실제 처벌을 받은 사례도 있다. 지난해 생후 이틀 된 아기를 군포 베이박스에 두고 떠난 20대 남녀가 아동복지법 위반(아동유기·방임) 혐의로 기소돼 2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아동학대 예방 강의 수강명령 40시간이 확정됐다. 이달초 대구시와 서구청 등은 대구의 한 교회에 설치된 '베이비박스'에 대해 "현행법상 설치 근거가 없고 아동 유기를 조장할 우려가 높다"며 교회 측에 운영 중지를 요청하기도 했다.

민간이 운영하는 베이비박스가 지속가능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데 이견을 찾긴 어렵다. 베이비박스가 영아 유기를 장려할 뿐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유전적 정체성에 대한 알 권리를 박탈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내 1호 베이비박스를 만든 이종락 목사는 "아이를 지키고 싶은데 도저히 상황이 안되는 엄마들이 베이비박스를 찾는다"면서도 "이런 상황에 처한 이들이 없어져 베이비박스를 없애는 것이 우리가 최종적으로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근본적인 해법은 친부모가 아이들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공익인권법인 공감의 소라미 변호사는 "베이비박스를 찾는 많은 이들이 미혼모인데, 이들에 대한 지원을 현실화하고 차별 문제를 해소해 아이를 포기하는 대신 양육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며 "예산이 많이 들고 관심을 못받는 분야여서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데, 아동 보호를 위해서도 정부 차원의 콘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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