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 경협과 리선권의 '갑분싸' 개그

머니투데이 박준식 기자 2018.10.3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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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국가를 3년 반 맡았던 전 대통령은 취임 이듬해 독일에 가서 드레스덴 선언(2014. 3. 28)을 했다. 내용은 평화통일을 바란다는 건데 기억나는 건 '통일대박' 정도다. "통일하면 너 좋고, 나 좋다"란 내용이었는데 우리는 선의로 여겼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그렇지 않았나 보다.

북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를 자존심과 결부했다. 백기투항하고 체제의 실패를 인정하면 지원을 재개하겠다는 미끼로 받아들였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당시엔 의아했는데 통계를 찾아보니 그럴만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 1500억원 규모였던 대북 민간지원은 이명박 대통령 시절 반토막이 났고, 박근혜 대통령 당시엔 100억원 이하로 사실상 전무했다.

민간의 지원은 '미사일 재원'이 아니다. 전염병 치료 등에 필요한 인도적인 생필품 위주다. 화폐 단위론 많아 보여도 우리 경제 수준을 고려하면 개도국 지원에도 미치지 않았다. 그걸 마다하고 대화 운운했으니 북은 치욕스러웠을 거다.



선행이 어려운 이유는 낮은 자존감으로 강퍅해진 상대 마음을 헤아려야 해서다. 경제에 실패한 북은 오히려 체면과 자존심을 중하게 여긴다. 미국의 제재로 90년대 '고난의 행군'을 지속하면서 400만명이 아사(餓死)했다. 그렇지만 드러내놓고 구걸한 적이 없다. 버티고 버티며 오기로 대항해왔다.

남북관계는 곧 전쟁이 날 듯했지만 정부가 바뀌어 이젠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미사일 스트레스가 없고, 오히려 경협이 논의된다. 경협은 말 그대로 양자의 협업이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돕는 선행이나 자선이 아니다. 제재가 풀리면 우리가 아니라도 미국이나 중국이 노릴 이권이다.

하지만 전 대통령을 배출한 야당은 '자선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 거 같다. 국감에서 이 당 의원은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총수들에 '냉면 면박'을 줬다"고 폭로해 정쟁을 촉발하며 "국민 자존심"으로 연결했다. 면박 당하면서 도와줄 필요가 있냐는 주장인데 이 인용은 재계의 공분을 자아내며 목적에 부합한 효과를 내고 있다.


'리선권'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분노할 게 아니라 곰곰이 맥락을 따져볼 필요는 있다. '목구멍'이란 단어는 저급하지만 대화는 웃고 떠드는 식사 중에 이뤄졌다. 경협을 빨리 실현하자는 촉구를 우리식으로 치면 '갑자기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아재 개그' 수준으로 말한 것이다.

재계 총수들이 농담과 모욕을 구분하지 못할 리더들인가. 리선권의 오버 액션을 사유로 수천억·수조원의 사업을 판단할 것이란 얘긴가.

열린 평화의 시대에 공공의 적은 내부에 있다. 이미 반세기를 반목했는데 말꼬리 잡기로 싸움을 지속하려 치면 한도 끝도 없다. 확실한 것은 우리가 좀 거칠고 세련되지 못한 형제와 상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보하면서 진정성 있게 포용하는 게 실리적으로도 우월한 전략이다.

[우보세] 경협과 리선권의 '갑분싸' 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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