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범 사건│② 남자들, 이러지 마세요

박희아 ize 기자 2018.10.1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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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3일 새벽, 최종범은 연인 사이였던 걸그룹 카라 출신의 멤버 구하라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112에 신고했다. 이후 최종범이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과정과 그에 대한 어떤 남자들의 반응까지, 사건의 전개를 정리했다. 이것은 남성이 여자 연인에게 해서는 안 될 일의 목록이나 다름없다.
최종범 사건│② 남자들, 이러지 마세요


1단계: 허락받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방의 집에 들어갔다

‘디스패치’의 보도에 따르면 최종범은 9월 13일 자정을 30분 정도 넘긴 시간에 구하라의 집에 찾아갔다. 그로부터 3일 전, 구하라가 매니저 및 연예 관계자 A씨와 점심식사를 했고, 자신에게 A씨의 존재를 알리지 않아 화가 났다는 이유에서였다. 이것이 가택 침입이라는 주장에 대해 그는 “구하라 씨 명의의 그 집(사건 장소) 현관문 비밀번호는 우리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과 다른 숫자를 조합한 것”(‘조선닷컴’)이라고 해명했다. 그가 선임한 곽준호 변호사 역시 “집 비밀번호는 두 사람이 만난 날을 조합한 것으로, 무단침입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비밀번호를 안다는 것이 타인의 집에 허락 없이 들어가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정을 넘긴 시간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의 말대로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이유로 상대 의사와는 상관없이 찾아오는 것은 불쾌함은 물론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사건 당시 최종범과 구하라의 관계와 같이 남자가 여자에게 불만을 갖고 있는 상태라면 더욱 그렇다.

2단계: ‘신체적 접촉’으로 멍들게 했다
구하라는 ‘디스패치’를 통해 최종범과의 다툼 이후 팔과 다리에 멍이 든 사진을 공개했다. 구하라와 한집에 있었던 후배 B씨는 “화이트보드가 떨어져 있었고, 문도 깨져 있었다. 공기청정기도 (일부) 부서졌다. (중략) 팔과 다리 쪽은 붓고 까졌다.”고 당시의 모습을 설명했다. 이에 대해 9월 15일에 진행된 한 인터뷰에서 최종범은 “난 태어나서 그 어떤 누구에게도 주먹을 휘두른 적이 없다. 더군다나 여자에게는 그런 적이 없다.”며 “만약 구하라가 멍이 들었다면 나를 때리고 할퀴는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신체적 접촉이 있었을 뿐, 직접적인 내 주먹이나 다른 폭력에 의한 것은 아니”(‘조선닷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진정시키기 위해” 한 행동이 어떻게 여성의 몸에 적지 않은 멍을 남겼는지는 의문이다. 또한 최종범 측 변호인은 10월 8일에 “일방적인 폭행 피해”, “쌍방폭행이라는 주장과 함께 구하라 씨의 산부인과 진단서(1주)와 상해진단서(2주)를 공개하여 사실을 왜곡하였다.”는 내용이 담긴 입장문을 배포했다. 9월 17일에 구하라가 공개한 사진에 대한 언급이 없는 대신, 신체 다툼이 있기 전부터 산부인과를 찾은 이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마치 해당 사건으로 인해 생긴 문제로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발언에는 산부인과 치료를 받고 있던 여성의 상태가 폭행으로 인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문제는 생략돼 있다. 물론 구하라도 상대의 몸에 상처를 입혔고, 이에 대해 “처벌을 받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자가 여자에게 완력을 쓰고 나서 폭력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면, 폭력의 기준이란 무엇일까.



3단계: 제3자에게 “동영상이 있다”고 알렸다
10월 4일에 ‘디스패치’는 최종범이 구하라와의 성관계 동영상을 제보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게시글을 두 차례 올렸다는 사실을 밝혔다. “제보드릴태니 전화좀 주세여. 늦으시면 다른대 넘겨요.”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엉망인 채로 올라온 첫 번째 게시글에 이어 두 번째 게시글은 보다 차분해진 어투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실망시키지않아요. 연락주세요. 지금 바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낼수는 없습니다.” 자신에게 사진과 동영상이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디스패치’에 따르면 구하라는 그가 자신과 싸우면서 입은 상처에 대해 제보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는 자신을 말리려는 구하라에게 두 사람의 성관계 동영상을 보냈다. 이에 대해 최종범은 “매우 흥분한 상태에서 영상을 전송한 것”이고, 공개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최근 조회수 1위를 하겠다며 누나의 나체 사진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초등학생과, 아내와 싸운 뒤 홧김에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한 남성의 사례(‘서울경제’)가 기사를 통해 보도됐다. 기사에서 인용된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성폭력피해자지원센터 자료에는 인터넷에 유포된 본인 사진을 삭제해달라는 요청 건수가 6개월간(지난 4월~9월) 998건에 달한 것으로 나와 있다.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을 받아서 여성이 경찰에 신고한 건수는 무려 202건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종범은 전 국민을 상대로 일을 하는 여성 연예인에게 성관계 동영상을 격한 다툼 이후에 보냈다. 여성 연예인 입장에서 이것을 좋은 의도로 해석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실제로 여성 연예인들 중에서는 성관계 동영상 유포 협박에 시달리거나, 실제로 동영상이 공개돼 연예 활동에 큰 타격을 입는 경우가 있었다. 최종범은 구하라에게 “본인이 찍었으니 본인이 보관”하라는 의도였다고 주장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 의도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다.

4단계: 변호사를 통해 “합의하에/여성이 먼저 찍자고 해서 찍은 영상”이라고 주장하다
최종범의 변호사 측은 JTBC ‘사건반장’에 출연, “동영상으로 구하라를 협박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동영상을 먼저 찍자고 한 것은 구하라 본인이고, 그런 동영상이기 때문에 우리 측 의뢰인 입장에서는 그것을 전혀 공개할 의도가 없었다.”고 말했다. 또 “찍은 동영상의 80%는 구씨가 먼저 시작했다. A씨가 ‘왜 찍냐’고 물어보니 구씨가 ‘서로 사랑하는 걸 남기고 싶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동영상을 누가 먼저 찍자고 했든 간에 그것을 상대방 동의 없이 제3자에게 공개해서는 안 된다. 또한 두 사람의 동영상 문제에서 핵심은 최종범이 동영상 공개를 통해 구하라를 협박하려고 했는가다. 최종범 측의 주장은 여성의 성적 취향 문제로 논점을 흐리게 만든다. 여기에는 여자의 성생활을 자극적인 이슈로 소비할 뿐만 아니라, 당사자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회 분위기도 영향을 미친다. 같은 동영상이라 해도 여성은 공개되는 순간 어떤 일을 겪을지 모를 공포에 시달린다. 한편 최종범 건을 사이버 성폭력으로 봐야 할 사안이 아니냐는 여론이 일어나자, 경찰은 곧바로 여성청소년과장을 팀장으로 한 전담 수사팀을 꾸리고 수사 인력을 확대했다.



5단계: 다른 남자들이 “동영상 구합니다”라는 글을 올린다.
동영상 문제에 대한 기사가 나오기 시작하자 “변호사님은 동영상 보셨나?”, “구하라 동영상 구해요”, “변호사님 좋은 건 같이 봅시다” 같은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한 여성이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릴 일에 대해, 어떤 남자들은 그의 삶을 망가뜨릴 ‘동영상’을 찾아 헤매고 있다. 남자친구는 밤에 여자의 집에 동의 없이 들어가고, 다툼이 있은 뒤에는 성관계 동영상을 보내며, 이를 기사로 접한 남자들 중에는 동영상을 공유하자며 댓글은 물론 검색 사이트에서 영상을 찾아보는 경우가 있다. 정말로, 여성은 어떻게 살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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