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발언은 2015년 10월에 방송된 수요미식회 37회에서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이 주장한 내용으로, 논란이 커지자 황교익은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이 옳다는 근거를 계속해서 생산해냈다. 그때마다 네티즌들의 반박이 이어지면서 소동이 점점 커져가고 있지만, 이번 문제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함정이 존재한다. 그리하여 결론은 아무래도 모두가 맞고 모두가 틀린 것 같다.
한편 현재의 일본 야키니쿠 식당은 ‘호르몬 야키(내장 구이)’를 팔던 한국인 식당을 그 기원으로 하는데, 이들 한국풍 고기구이 식당을 ‘야키니쿠’로 부르기 시작한 건 1965년 한일수교 이후부터라고 한다. 한국이 남북으로 갈라진 상황에서 한일교류가 시작되면서 식당 주인들의 정치이념에 따라 자기네 식당의 명칭을 ‘조선요리점’으로 부를지 ‘한국요리점’으로 부를지에 대한 갈등이 있었는데, 그 중재안으로 양쪽 모두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고 의미도 통하는 야키니쿠라는 단어를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1967년에 개봉한 일본 영화 ‘社長千一夜’에는 ‘조선 야키니쿠’를 먹었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67년이면 아마 식당명으로서 야키니쿠는 아직 완전히 자리를 잡기 전의 시기일 것이다.
또한 당시의 기록을 보면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특성상 불고기와 야키니쿠가 같은 뜻으로 혼용되고 있으며, 매일신보 1941년 7월 30일 자의 “평양명물 불고기 가격의 인상을 진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면 “평양명물인 야끼니꾸(燒肉) 가격을 올려달라는 진정이 있어 세인의 주목을 끌고 있다.”라는 대목을 볼 수 있다. 다만 불고기라는 새로운 요리에 어째서 불고기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야키니쿠라는 단어가 그 탄생에 영향을 끼쳤을 수는 있다. 하지만 황교익의 주장대로 불고기가 야키니쿠의 번역이라 하기에는, 애초에 요리 이름조차 아닌 번역어인 야키니쿠에게 너무 커다란 감투를 씌워주는 느낌이다. 말하자면 셀카나 츄리닝이 ‘Selfie’와 ‘training'의 번역어가 아닌 것처럼. 참고로 평양 불고기에 대한 기록을 보면, 고기에 양념을 하는 스타일도 있지만 하지 않고 그냥 구워 먹는 스타일도 있었고, 생고기에 설탕을 찍어서 굽기도 하며, 구운 고기에 또 다른 양념을 찍어서 먹는 등 너비아니와는 확연히 다른 요리가 되었기에 이를 부르는 새로운 단어가 필요하게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이번 불고기 어원 논란은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면서 벌어진 해프닝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다만 황교익은 20년이 넘게 다리를 만지다 보니, 이번만큼은 코끼리의 모양새에 대해 참고할 만한 제언을 도출해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자신의 주장을 반박하는 지적에 대해 ‘중졸 정도 지적 수준’ 운운하는 발언이나 보여주는 ‘전문가’라면, 그의 제언이 참고 이상의 쓸모를 가지게 되는 날이 과연 언제쯤 오게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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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사람들은 쓸모없음 이하의, 황교익의 발언을 여럿 목격한 바 있다. 간단히 굵직굵직한 것만 살펴보자면, ‘혼밥은 자폐’, ‘백종원은 애정 결핍으로 자란 맞벌이 세대에게 인기’, ‘한국 치킨은 맛이 없다’, ‘미각 교육은 엄마를 통해 6살까지 이루어져야만 가능’, ‘분유를 먹고 자란 젊은이들은 단맛 중독’, ‘단 음식은 공허하고 자살률 1위와 연관’, ‘떡볶이를 맛있다고 느끼는 것은 세뇌의 결과’ 등이 있는데,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이에 대한 합리적 반박이 여러 차례 SNS와 언론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알고 계실 것이다. 황교익은 이런 발언들에 대해 계속해서 자신이 옳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황교익은 이번 불고기 논란에서만은 약간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과거의 자기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