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로 올라가는 계단./사진=이호준 여행작가
주차장에 차를 두고 걷다가 '동방제일선원(東方第一禪院)'이라는 현판이 붙은 일주문을 지나 왼쪽에 있는 수덕사 선(禪)미술관부터 들른다. 고암 이응노 화백의 작품들을 먼저 만나보기 위해서다. 선미술관과 이 화백이 머물렀다는 수덕여관은 아래위로 나란히 서 있다. 미술관 안에는 서명조차 없는 이응노의 습작들이 여러 점 전시돼있다. 처음 보는 작품들은 아니지만 하나하나 꼼꼼하게 눈에 담는다. 고찰에 들러 미술품까지 볼 수 있으니 보너스라도 받은 것처럼 마음이 풍성해진다. 덕숭총림 3대 방장을 지낸 원담 스님의 선필까지 돌아본 뒤 수덕여관으로 간다.
절로 올라가는 길은 긴 역사만큼이나 깊고 서늘하다. 단순히 계절 탓만은 아니다. 덕숭산 수덕사는 창건 연대가 정확하지 않다. 다만 백제 위덕왕 때 고승 지명이 처음 세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금강문을 지나고 사천왕문을 지난다. 마지막 계단이 시작되기 전 황하정루가 기세등등하게 서 있다.
박물관에서 나와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그 끝에 서면 시야가 확 트이면서 절집들이 우르르 눈으로 들어온다. 꾸밈없는 외양의 대웅전이 보이는 순간 마음이 턱 놓인다. 특별한 이유 없이 안도감을 주는 건물이다. 수덕사에서 대웅전을 빼면 아무리 많은 건물을 지어도 더 이상 수덕사가 아니다. 절마당의 늙은 느티나무와 소나무와도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저 아래 펼쳐져 있는 들판을 바라본다. 내포평야의 한 자락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세상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불국토(佛國土)다. 그리고 수덕사 풍경의 백미다. 바람은 또 얼마나 시원한지. 가슴에 담고 올라온 온 응어리들이 조금씩 녹아내린다. 관음전에서 달려온 목탁소리가 속진에 물든 귀를 열더니 끝내 마음의 빗장까지 열어젖힌다. 푸른 숲 속으로 작은 새 한 마리 풍덩! 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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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대웅전./사진=이호준 여행작가
단청 없는 대웅전과 3층 석탑, 그리고 경허와 만공. 수덕사의 상징과 가치를 생각한다. 화려한 치장만이 빛을 발하는 것은 아니다. 단청을 하지 않은 대웅전이 그 증거다. 이 건물은 1308년에 세워진 고려 건축물의 대표작이다.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맞배지붕의 멋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측면과 팽팽한 긴장감을 잃지 않는 배흘림기둥, 그리고 장식 없는 문살이다. 특히 옆에서 본 대웅전은 군더더기를 배제한 단순미의 정수를 보여준다.
담을 따라가다 경내를 벗어난다. 덕숭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 이어진다. 고즈넉한 환경 속에서 천천히 걷기에 좋은 길이다. 가다 보면 중간중간 여러 암자들을 만날 수 있다. 선수암·소림초당·향월각·금선대·전월사… 그리고 능인선원이 있는 정혜사. 그중 금선대에는 경허와 만공스님의 영정이 있다. 수덕사를 오늘의 대찰로 만든 이는 경허와 만공스님이다. 경허는 조선말기의 침체됐던 불교계에 등장해서 선불교를 진작시킨 선의 혁명가이자 대승(大乘)의 실천자였다. 만공은 스승인 경허를 계승하여 선풍을 진작시킨 선지식이다. 일제강점기 선우공제회운동(禪友共濟會運動)에 지도자로 참여했으며, 31본산 주지회의에 참석하여 조선 총독 미나미에게 일본의 한국불교정책을 힐책했다.
가파른 길을 오르다 너럭바위 위에 앉아 숨을 고른다. 시간도 넉넉하니 급할 게 없다. 여기는 풀과 나무와 새의 영역이다. 솔 향을 싣고 온 바람소리가 어릴 적 듣던 풀피리 소리처럼 감미롭다.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영원히 머무를 수는 없는 법. 내포 들판을 달려온 바람이 속세의 시간을 알려주지 않았으면, 저물 때까지 있을 뻔했다. 가벼워진 몸과 마음을 일으켜 다시 길을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