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가 드나드는 조용한 항구에 선박이 오가는 시골 같은 도시가 핀란드 헬싱키의 매력이다. 항구 옆엔 언제든 즐길 수 있는 수영장 시설이 마련돼 있다. /헬싱키(핀란드)=김고금평 기자
거친 맛에 길들여진 탓일까. 커피 맛은 그저 그랬다. 밋밋한 커피 향을 입에 머금으면서 ‘맛’보다 ‘멋’에 취한 시간이 30여 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알고 보니, 축조된 지 140여 년이 지난 이 카페는 그 오래된 역사만큼 볼 것 많은 ‘장관의 미학’을 오롯이 뽐내고 있었다.
발트 해를 끼고 있는 헬싱키는 한적한 도시의 상징이다. 해안 곳곳에 마련된 카페와 레스토랑에는 북적거림 대신 한적한 표정의 사람들이 영화 한 장면처럼 묘사되기 일쑤다. 사람들의 대화는 대개 조용한 분위기에서 이뤄진다. /헬싱키(핀란드)=김고금평 기자
소음이 줄자, ‘멘붕’이 왔다. 단 5분이라도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바쁜 현대 사회에 길들여진 자아가 시간이 멈춘 듯한 세상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을 새삼 경험한 순간이었다.
은 공예와 가죽 제품을 100년 이상 가업으로 이어온 헬싱키 중심부에 위치한 락소&선드맨. 마리아는 아버지를 이어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헬싱키(핀란드)=김고금평 기자
이 시각 인기 뉴스
겉으로 화려함을 내세우지 않지만, 안으로 단단한 미학을 보여주는 생활상은 각종 ‘디자인’에서 오롯이 증명된다.
디자인숍 락소&선드맨을 방문했을 때, 가게 주인 마리아는 “은과 가죽 제품을 100년 넘게 다루고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전통을 지키고 이를 아끼는 문화가 핀란드에서 당연하다는 설명이었다.
세계 환경국가 1위(2016년 환경성과지수 1위)에 걸맞게 핀란드 디자인의 재료에 플라스틱은 거의 없다. 대부분 세라믹이다. 자연친화적이면서 기능적이고, 단순하지만 깊은 미학을 추구하는 ‘질리지 않는 아름다움’은 핀란드 디자인의 핵심가치이기도 하다.
공예품 가게 로칼(lokal)엔 작지만 아름다운 생활 공예품들이 많다. 자연친화적이고 단순한, 다소 비싼 가격의 제품들은 소유 욕구를 강하게 불러일으킨다. /헬싱키(핀란드)=김고금평 기자
사진작가 출신의 주인 카티야 하겔스탐은 “핀란드는 복잡한 사회생활에서 벗어나면 집에선 안정된 정서를 갖기 위해 최대한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다”며 “핀란드 디자인의 핵심은 형태나 색이 아닌 제품 탄생과 얽힌 스토리”라고 강조했다.
헬싱키디자인박물관에서 선보인 혁신과 독창성의 이딸라 제품들. /헬싱키(핀란드)=김고금평 기자
글라스 처리를 몰드로 바꿔 나뭇결 모양을 구사한 혁신과 독창의 디자이너 티모 사르파네바가 몸담았던 1960년대 이탈라는 세계적 회사로 도약하는 전기를 맞았다.
1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리를 지켜온 카페&레스토랑 카펠리. 통유리창의 목조 건물로 만들어져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헬싱키(핀란드)=김고금평 기자
유럽 교회가 대부분 비슷한 모양일 것이라고 교회 관광을 포기하는 이들조차 만족시키는 명소 교회들이 있다. ‘암석 교회’라 불리는 템펠리아 우키오는 암반을 깎아낸 돌로 내벽을 만들어 세계에서 가장 신기한 건축물로 유명세를 탔다. 쇼핑몰이 모여있는 중앙역 근처에 자리한 캄피 채플은 달걀 모양으로 창문이 하나도 없는 게 특징.
달걀 모양의 캄피 채플은 교회의 일반적 모양과 다른 건축 양식으로 관광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헬싱키(핀란드)=김고금평 기자
핀란드는 한 시간만 머물면 무료한데, 하루를 보내면 특유의 고요와 침묵에 뜻하지 않은 힐링을 얻고 이틀째가 되면 구석구석 찾아보는 재미가 남다르다. ‘귀’보다 ‘눈’이 주는 즐거움이 가득한 도시다.
헬싱키엔 수많은 트램들이 대중의 교통을 책임진다. 한가롭게 거니는 헬싱키 시민의 표정. /헬싱키(핀란드)=김고금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