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관광객 가족이 퓨전한복을 입고 경복궁을 관람하고 있다. 이들은 "퓨전한복인지 모르고 입었다"고 말했다.
전통문화를 넘어 이미 관광객들 사이에서 궁궐 방문 시 필수코스같이 자리잡은 한복 착용과 관련해 논란이 불붙었다. 경복궁·창덕궁·창경궁이 있는 종로구청이 '퓨전한복'의 고궁 무료입장을 금지해달라고 문화재청에 건의하기로 한 것. 이에 대해 '전통문화를 훼손하는 국적불명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용 불량 한복'이라는 주장과 '이동의 편의성을 고려하지 못한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입장이 맞서고 있다.
경복궁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커플이 퓨전한복과 용포를 입고 사진을 찍고 있다.
종로구청은 지난 11일 '우리 옷 제대로 입기 한복토론회'를 열어 "우리 전통이 아닌 것에 계속 혜택을 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자리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재청 관계자, 서울 소재 궁궐 관계자 및 한복 대여업체 상인들, 한복 전문가, 지역주민 등이 참석했다.
이에 대해 한복 대여업체 관계자들은 구청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내놨다. 토론회에 참석한 한복 대여업체 상인은 "전통한복 문화를 지키자는 취지에는 공감한다 "며 "다만 뭐가 전통한복이고, 뭐가 퓨전한복인지 가이드라인이 정확하지 않은 점은 문제"라고 말했다.
종로구청에서 경복궁 인근 한복 대여업체에 제공한 한복 착용 팸플릿. 한복 착용방법에 대한 부정적인 예로 속치마 없이 입은 치마도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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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인근 100여곳의 한복 대여업체 중 20개 업체는 협의체를 구성해 구청과 소통을 위해 노력 중이다. 한복 대여업체 관계자는 "장사만 생각하면 문화재청이 입장료를 받는다고 해도 대여비에서 3000원(성인 입장료) 빼주면 그만"이라며 "대여업체 입장에서는 생존권이 걸렸다고 할 수도 있는데 종로구청이 전통한복을 지키는 방법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외국인 관광객·어린 학생들 "퓨전한복? 예뻐서 입어요"
퓨전한복은 전통한복에 비해 장식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더 비싸다. 전통한복이 더 저렴한데도 관광객들은 퓨전한복을 더 많이 찾는다.
퓨전한복을 입고 경복궁을 찾은 중학교 3학년 A양은 "4시간에 2만9000원에 (퓨전)한복을 빌렸다"며 "대신 머리에 꽂은 장신구는 무료"라고 말했다.
경복궁 인근 한복 대여업체에서 전통한복을 빌릴 경우 평균 2시간에 1만~1만5000원 수준이다. 퓨전한복은 2시간에 2만원가량이며 장신구에 따라 가격에 차이가 있다.
경복궁으로 현장학습을 왔다는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은 "4시간에 2만9000원에 한복을 빌렸다"며 "퓨전한복이라는 설명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얼굴도 예쁘게 찍어달라고 말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희정 기자
한복 대여업체 관계자는 "퓨전한복을 고르는 관광객들에게 전통한복이 아니라고 설명한다"면서 "그런데도 대부분 퓨전한복을 고른다"고 말했다. 그는 "유행을 많이 타는 한국인 손님은 줄어든 편"이라며 "전통문화를 지키기 위해 한복을 입는 관광객보다 SNS의 영향이 크다"고 덧붙였다.
◇문화재청 '전통과 관광' 사이에서 난감
한복의 대중화 및 세계화를 위해 '한복 착용자 고궁 무료입장'이란 제도를 만든 문화재청은 아직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이 수정되거나 정해진 부분은 없다"며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따져가면서 의견을 수렴 중"이라고 말했다.
경복궁 인근 한복 대여업체 앞에 퓨전한복이 진열돼 있다. 일명 '어우동 모자'를 쓴 마네킹이 눈에 띈다.
종로구청은 공익을 지키기 위해 입장을 고수한다는 계획이다. 구청 관계자는 "상인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지만 (따르지 않을 경우) 예산 지원 혜택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며 "전통한복 활성화를 위해 학생들이 한복을 입고 캠페인을 펼치는 행사 등을 시행 중"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