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장거리 '천국' 단거리 '지옥'…'택시전쟁' 은평구

머니투데이 이동우 기자, 이해진 기자, 원은서 인턴기자, 손소원 인턴기자 2018.09.04 04:05
글자크기

[택시전쟁, 이제 끝내자]⑥택시기사들, 장거리·특정 지역 선호 이유 따져보니

편집자주 매일 밤 거리에서선 전쟁이 벌어진다. 택시에 올라타려는 사람과 거부하는 사람. 수십년째 승차거부가 계속되지만 당국의 모습은 좀처럼 보이질 않는다. 해결을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의지가 없는 것일까. 시민의 불편은 끝없이 이어진다. 난제인 승차거부의 문제를 다각도로 들여다 보고 해법을 모색해 봤다.

[MT리포트]장거리 '천국' 단거리 '지옥'…'택시전쟁' 은평구


#법인택시 기사 권모씨(66)는 지난달 21일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 서울 군자역에서 경기도 하남까지 가는 손님을 태웠다. 간만의 장거리 손님으로 운이 좋았다. 20분 정도를 운행해 1만3000원을 요금으로 받았다. 빈 차로 서울 강변역에 돌아와서 10분 정도를 대기하다 천호동에 가는 손님을 태웠다. 거리가 멀지 않아 요금은 7000원에 그쳤다.

새벽 1시 천호동 인근에서는 단거리 손님밖에 잡히질 않았다. 3명을 태웠지만 모두 5000원 이내의 짧은 운행이었다. 군자역으로 넘어오니 2시 가까이가 됐다. 면목동에 가는 8000원짜리 손님을 마지막으로 자양동 자택으로 귀가했다. 이날 권씨는 심야 2시간여 동안 장거리 운행 1건, 단거리 5건을 뛰었다. 번 돈은 4만원이 채 안 됐다.



#개인택시 기사 문모씨(65)도 같은 날 자정 서울 청담동에서 운행을 위해 대기 중이었다. 그때 스마트폰 택시 애플리케이션으로 경기도 용인을 가는 콜이 들어왔다. 장거리 운행이었다. 바로 승인을 누르고 달려가 손님을 태웠다. 35분 동안 운행을 해서 3만원을 벌었다. 빈 차로 성남 정자동으로 이동했다.

정자동에서 대기하니 회식을 마친 직장인이 택시를 잡았다. 목적지는 서울 화곡동으로 또 장거리 운행이었다. 50분 가까이 운전해 승객을 집에 데려다 주고 4만원을 받았다. 만족스러운 영업을 한 문씨는 곧바로 자양동 자택으로 귀가했다. 이날 문씨는 심야 2시간 동안 장거리 운행을 2건 뛰었다. 총수입은 7만원이었다.



택시기사들이 승차거부 혹은 '디지털 승차거부'(콜거부)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단거리보다 장거리 승객을 골라 태우는 것이 훨씬 돈이 되기 때문이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운행을 해도 장거리 승객 유무에 따라 수익은 큰 차이를 보인다.

3일 서울시택시정보시스템(STIS)에 따르면 개인택시와 법인택시의 1인당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각각 10.8시간, 9.9시간이다. 이 가운데 실제 손님을 태우고 영업을 한 시간은 개인택시가 5.7시간, 법인택시는 5.5에 그친다. 하루 운행의 절반가량은 승객이 없는 상태로 대기하는 셈이다.

실제 승객을 태우고 운행하는 시간이 짧다 보니 택시기사들은 수요가 몰리는 출근 시간과 심야에 선택적 영업을 하게 된다. 장거리 혹은 다음 손님을 태우기 좋은 곳을 고른다. 법인택시를 운전하는 이모씨(65)는 "기본적으로 수입이 너무 없으니까 조금이라도 더 벌려고 하면 승차거부를 하고 콜거부를 한다"며 "최근에는 손님도 별로 없어서 어지간하면 다 태우지만 콜은 조금이라도 거리가 먼 곳으로 받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택시기사들이 기피하는 지역의 주민들이다. 머니투데이가 서울시 개인·법인 택시기사 100명을 상대로 인터뷰한 결과 가장 운행을 꺼리는 지역으로 은평구(19.6%)를 꼽았다. 이어 노원구(16.1%), 강서구(15.1%) 순으로 나타났다. 이들 지역은 외곽인 데다 대부분 주거지다 보니 운행을 마치고 빈 차로 빠져나와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직장인 박모씨(34)도 야근이나 회식을 한 날에는 귀가 자체가 전쟁이다. 집이 은평구 불광역 인근에 있어 택시가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박씨는 "콜로 택시를 부르면 1시간 가까이 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어쩌다 운 좋게 도로에서 빈 차를 잡아도 집 주소를 얘기하면 기사들이 인상을 찌푸린다"고 말했다.

STIS 자료도 비슷한 결과를 보인다. 올해 5월 서울시 개인·법인 택시의 운행 기록을 살펴보면 '강남구 역삼동', '서초구 서초동', '관악구 신림동', '노원구 상계동'이 승하차 상위 5개 지역에 중복된다. 유동인구가 많아 승객이 몰리는 지역만 순회하며 영업하는 행태다.

고질적 승차거부 해결을 위해 택시기사들은 수익 개선이 급선무라고 입을 모은다. 앞선 인터뷰에서 택시기사의 70%(70명)는 승차거부·콜거부 대책으로 '기본요금과 심야 할증 인상'을 꼽았다.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과 합승을 허용해야 한다는 대답은 각각 6명과 3명에 그쳤다.

송제룡 경기연구원 휴먼교통연구실장은 "택시 문제는 근본적으로 운전기사의 처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적정한 요금을 내고 택시를 이용하게 되면 운전자의 처우가 좋아지고 승차거부 문제 등 불법적인 행태가 많이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