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공정하면서 가장 사기가 심한 비즈니스”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8.08.24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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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새책] ‘금융의 모험’…인문학의 눈으로 되살린 금융의 공정함과 우아함

“금융, 공정하면서 가장 사기가 심한 비즈니스”


금융은 흔히 ‘나쁜 비즈니스’로 통한다. 특히 금융 위기 이후 버너드 메이도프의 금융사기, 에너지 회사 엔론의 회계 부정 등으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은 금융이 가치 창출이라는 본연의 목적보다 가치를 빼앗은 사악한 분야로 그려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금융은 은퇴 자산을 마련하고 주거와 교육에 투자하는 등 일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매개라는 점에서 버릴 수 없는 카드이기도 하다.



저자는 하버드경영대학원에서 한 마지막 강의를 책으로 펴내며 “금융을 무작정 사악한 것으로 취급하는 태도는 생산적이지 못하다”며 “금융에 담긴 관념과 이상을 문학과 역사, 철학 속에 포착하면 그것이 발휘하는 공감력도 커지고 부패에 대한 저항력도 강해진다”고 말했다.

여전히 낯선 금융의 정체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부패에서 희망의 아이콘으로 이미지를 변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저자는 제목에 ‘모험’이라는 수식을 붙였다.



금융이란 대체 무엇일까. 이에 대한 그럴듯한 해답을 찾기 위해선 17세기로 거슬러 가야 한다. 금융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던 상인(행동의 원형)과 철학자(생각의 원형)는 주주에게 자문을 구한다.

“그것은 유럽에서 가장 공정하면서도 가장 사기가 심하고, 세상에서 가장 고상하면서도 가장 악명 높으며, 지구 상에서 가장 우아하면서도 가장 상스러운 것이지요. 금융이란 학술적인 배움의 진수인데 사기 수법의 전형이기도 합니다. 지적인 사람이 쓰면 시금석인데, 겁 없는 사람이 쓰면 묘비이지요.”

주주의 쉽고 정확한 설명은 저술가 호세 데 라 베가가 쓴 ‘혼돈 속의 혼돈’(1688)에 나온 이야기다. 저자는 책에서 수식이나 그래프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인문학적 프리즘을 통해 이야기한다. 금융의 인간성 회복에 주력한 셈이다.


금융을 크게 ‘자산 가격 결정’과 ‘기업 재무’로 나눈 저자는 전자에선 ‘리스크’ 중심으로, 후자엔 ‘합병과 책임’ 같은 주제로 설명한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서 여주인공 리지 베넷은 재정적 안정을 위해 리스크를 회피하기보다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리스크를 감수하는 쪽을 택한다. 리지는 진정한 사랑인 다시씨가 처음 옵션(청혼)을 제시했을 때 수용하지 않고 리스크 조사와 수익이 확인되고 나서야 두 번째 옵션(청혼)을 받아들였다.

앤서니 트롤럽의 소설 ‘피니어스 핀’의 바이올렛 에핑검도 뛰어난 리스크 관리자다. 단 한 사람과의 로맨스를 찾는 결혼은 위험한 전략. 에핑검은 좋은 선택지를 여럿 확보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금융에서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뒤 적절한 시점에 특정한 자산에 투자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조지 오웰과 제프 쿤스의 이야기는 레버리지(빚을 낸 투자)의 위력과 함정을 알려주는 대표적 사례다. 오웰은 ‘1984’를 쓰기까지 상호 의존의 비용을 줄이기 위해 외딴 섬으로 떠났다. 책임과 의무가 없는, 레버리지가 낮은 삶을 좇았던 것.

반면 쿤스는 20년이나 걸린 거대한 설치 작품을 위해 중간상과 투자자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더 큰 일을 벌이기 위해 거기에 뒤따르는 책임과 제약 조건을 쌓아가면서 리스크와 보상을 결합하는 방식이었다.

금융 시각에서 보면 오웰은 오로지 자기 자본만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회사고, 쿤스는 큰 빚을 내 수익을 창출하는 매수자다. 저자는 “성공한 기업가는 제프 쿤스를 닮아가야 하는 조지 오웰”이라고 나름의 해답을 제시했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에 나오는 주인공 농부 바흠은 지주가 됐는데도 욕망이 끝이 없어 새로운 땅을 매입하려고 한다. 하루 동안 돌아보고 올 수 있는 땅을 보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쓰러져 죽고 만다.

금융은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소설 속 주인공과 다르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금융은 리스크 회피를 가장 중요한 전제로 삼는데, 그 기저에는 ‘부의 한계 효용 체감 법칙’이 자리한다. 많이 가질수록 만족이 떨어지는 게임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금융이 탐욕에 휘둘리는 배경이 뭘까. 저자가 제시한 금융의 ‘꼴통 이론’에 따르면 수량적 정확성의 겉멋에 물든 금융 시장이 우리가 얻는 결과를 우리의 자질과 연결하려는 욕망을 한껏 키워주기 때문이다.

이 리스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해결책은 윌라 캐더의 소설 ‘오, 개척자들이여’의 주인공 알렉산드라 버거슨이 일러줄지 모른다. 남동생 셋을 데리고 가족농장을 꾸린 그는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레버리지를 통해 더 많은 땅을 사들여 자립적인 지주로 우뚝 섰고, 성공한 뒤에도 검소한 삶을 살았다. 리크스 감수에 중독되지 않으면서 끝없는 욕망도 키우지 않은 성공 사례인 셈이다.

저자는 “금융의 결함을 바로잡으려면 규제나 분노만으로 부족하다”며 “인문학적 성찰을 통해 금융이 원래 추구하는 핵심 관념과 이상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의 모험=미히르 데사이 지음. 김홍식 옮김. 부키 펴냄. 364쪽/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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