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메릴린치 단타, 시세조종이라고?

머니투데이 이태성 기자 2018.08.17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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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릴린치 미스테리]⑤법조계, 시세조종 요건 못갖춰 "주가 움직였다고 모두 시세조종 아냐"

편집자주 한국 주식시장에 지난해부터 외국계 증권사 메릴린치 창구를 이용해 대규모 자금으로 단타를 치는 정체불명의 펀드가 출현해 논란이다. 코스피 대형주에서 코스닥 소형주까지 가리지 않고 단기 매매로 수익을 내는 메릴린치 창구의 행태에 투자자들은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메릴린치 창구 논란과 그들의 정체, 매매 패턴과 제도적 문제를 짚어본다.

[MT리포트]메릴린치 단타, 시세조종이라고?


메릴린치 창구를 통해 이뤄진 단타 매매에 대해 일부 개인투자자들은 시세조종행위로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가총액이 크지 않은 종목의 경우 이 단타펀드가 치고 빠지는 동안 주가가 큰 폭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단순히 단타로 시세가 움직였다고 해서 시세조종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시세조종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이 있는데 현재 밝혀진 내용만으로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세조종행위는 △위장거래△현실거래 △허위표시 △불법 안정조작 및 시장조성 △현선연계 등에 의한 시세조종으로 구분된다.

이중 메릴린치 창구를 통해 이뤄진 단타는 현실거래에 해당된다. 다른 사람과 미리 짜고 같은 가격에 매매하거나(위장거래) 허위사실(허위표시)을 유포했다고 보기는 어려워 다른 시세조종 요건과는 관련이 없다.



'현실거래에 의한 시세조종'은 '매매를 유인할 목적으로 본인 명의 또는 타인 명의로 된 여러 개 계좌를 이용하거나 타인과 공모해 주식 매매가 성황을 이루고 있는 듯이 오인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매매를 유인할 목적'이 시세조종 성립의 핵심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허수주문'이다. 허수주문은 매수의사 없이 직전가 혹은 상대호가와 대비해 체결 가능성이 없는 저가 주문을 반복적으로 내 매수잔량이 많이 쌓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법조계는 알고리즘을 이용한 거래에 '매매를 유인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알고리즘 매매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설계된 논리구조에 따라 인공지능이(AI)가 주식을 자동으로 매매할 수 있도록 하는 주식 거래 방식이다. 각종 경제지표와 현재 주가, 거래량, 기업실적 등 주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를 프로그램에 입력해두면 AI가 데이터를 조합하고 분석해 주식을 자동으로 사고파는 행위를 한다.


메릴린치 창구를 통해 이뤄진 거래는 단순 매수, 매도에서 공매도, 이벤트 드리븐(수익창출 기회가 발생하면 빠르게 매매하는 전략)까지 전략이 다양하고 모두 시장에서 널리 쓰이는 수법이다. 시장의 상황에 맞춰 거래가 이뤄졌고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투자자를 속였다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단타거래도 거래의 한 종류이기 때문에 현행 법으로 메릴린치 창구를 통해 거래하는 펀드를 처벌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 알고리즘 매매와 관련해서는 국내에 규제가 거의 없다. 잘못된 주문이 대규모로 체결될 경우를 막기 위해 이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있을 뿐이고, 해외도 사정은 비슷하다는 게 한국거래소 설명이다. 거래소 주식매매제도팀 관계자는 "부정한 방법을 이용한 시세조종이 아닌 경우 시세차익을 얻기 위한 거래는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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