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은 사회극…“700명 폭염 사망자, 예고편에 불과”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8.08.10 06:30
글자크기

[따끈따끈 새책] ‘폭염 사회’…폭염은 사회를 어떻게 바꿨나

폭염은 사회극…“700명 폭염 사망자, 예고편에 불과”


우리는 폭염을 너무 쉽게 무시해왔다. 유명 과학자들이 경고한 “생태계 지원 시스템을 위협하고 인간사회 생존에 위협할” 이산화탄소 수준 350ppm보다 더 높은 397ppm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2050년쯤엔 500ppm에 이르러 지표면의 온도가 섭씨 2도 이상 오른다.

국제적으로 대다수 재난 피해는 허리케인과 홍수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세월 동안 가장 치명적인 형태의 기상 이변은 폭염이다. ‘요란한’ 홍수보다 소리와 형체 없이 조용히 다가오기에 그 위험도를 덜 느낄 뿐이다. 21세기 동안 폭염으로 2003년 유럽 전역에서 7만 명이 사망했고, 2010년 러시아에선 5만여 명이 사망했다.



1995년 미국 시카고에선 기온이 섭씨 41도까지 오르는 폭염이 일주일간 지속해 700여 명이 사망했다. 이전까지 무더위를 사회적 문제로 취급한 적이 없어 시민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폭염이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내는 것도 아니고 홍수나 폭설처럼 스펙터클한 장면을 연출하지도 않을뿐더러 희생자 대부분이 눈에 잘 띄지 않는 노인, 빈곤층, 1인 가구에 속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20여 년이 지난 한국에 닥친 폭염으로 발생한 사망자도 7일 현재 40명이 넘는다. ‘시카고 사태’처럼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폭염은 말 그대로 ‘자연재해’일 뿐이었다.



저자는 시카고 폭염으로 사망한 희생자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생을 앗아간 사회학적 단서들을 쫓기 시작했다.

시카고 폭염의 피해 양상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아무도 모르게 홀로 죽어간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독거노인, 특히 남성 노인들은 인간관계가 매우 제한적이며 사회적 접촉이 적고 대부분의 시간을 TV를 보며 지낸다. 몸이 불편해 외출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대부분 노인 임대주택이나 원룸 주거시설에 사는 이들에겐 냉방장치도 없었다. 열악한 주거환경은 취약계층 주민들을 더 심각한 사회적 고립으로 이끌었다.

시카고 폭염은 그러나 비슷한 두 지역에서 상반된 결과를 도출했다. 시카고의 노스론데일과 리틀빌리지는 서로 인접한 지역으로 폭염 당시 독거노인, 빈곤층 노인의 수가 거의 동일했고 기후 또는 유사했다. 이상한 건 노스론데일은 폭염으로 19명이 사망한 반면, 리틀빌리지는 10분의 1 수준에 그쳤다.


노스론데일은 1950년대 이후 쇠퇴하면서 폭력범죄, 낙후된 기반시설, 가족의 분산 같은 위험한 환경에 쉽게 노출돼 지역 공동체 역할이 약화했다. 리틀빌리지는 번화한 거리와 밀집된 주거지역, 낮은 범죄율 등 안전한 환경이 조성됐다. 노스론데일 주민들이 거리의 위험 때문에 방에서 홀로 폭염을 견딜 때, 리틀빌리지 주민은 쇼핑하며 이웃과 교류할 수 있었다.

폭염 사망자를 키운 데에는 시키고 공공기관의 ‘역할’도 한몫했다. 1990년대 기업가적인 정부 모델의 영향을 받은 시카고 시는 효율성을 앞세워 많은 분야를 민간 단체에 아웃소싱했다. 저소득층의 에너지 비용을 지원하는 정책에서 주민들이 직접 신청하는 방식을 만들어 결과적으로 더 고립된 환경을 조성한 셈이었다. 심지어 한 관료는 폭염으로 죽은 사람들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겨 물의를 빚기도 했다.

저자는 폭염을 ‘사회 불평등’ 문제로 진단한다. 여기에는 공공재화를 잘못 다룬 정부의 문제, 공학기술적 대처의 실패, 시민사회가 서로 보살피지 못하는 공동체 부재의 문제도 결부돼 있다.

저자는 “폭염은 일종의 사회극으로 우리가 살고 죽는 조건을 드러낸다”며 “우리가 관습적으로 당연시하고 숨기려 했던 사회적 기반에 생긴 균열을 조사해야 이 같은 참사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많은 환경학자들은 폭염이 거의 육지 전체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90~99%라며 무엇보다 지구온난화의 원인 가운데 하나인 냉방장치에 더 크게 의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상학자 폴 더글러스가 “1995년 시카고 대참사는 앞으로 다가올 일의 예고편에 불과하다”고 던진 경고가 결코 허언이 아님을 지금 전 세계 기후가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폭염 사회=에릭 클라이넨버그 지음. 홍경탁 옮김. 글항아리 펴냄. 472쪽/2만2000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