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청와대에서 진행된 제1회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원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매년 5만개 넘는 정부 R&D(연구·개발) 과제 성공률이 98%에 달한다’는 보고서를 받아들었다. 문장 옆에 추가된 ‘선진국 기초과학 연구 성공률은 20%’ 라는 문구를 보면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국내 연구자는 당장 예산을 따고 실적을 내야 다음 연구과제를 받을 수 있다. 실패하면 연구비를 몽땅 토해내야 한다. 그러니 결과가 뻔하고 비교적 쉬운 연구만 하려한다. 연구 품질을 평가하는 잣대인 ‘연구논문 1편당 평균 피인용 횟수’를 보자. 논문 수 상위 50개 국가 중 우리나라는 33위이다. 순위 바닥권을 헤맨다. 혈세로 ‘혼논’(혼자 쓰고 혼자만 읽는 논문)만 양산하는 꼴이라는 비판이 잇따른다.
와셋 리스트에서 국내 대학 순위로는 서울대가 1위(100건)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카이스트(KAIST)·광주과학기술원(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등의 과기원과 함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 대부분이 걸려들었다. 실적올리기에 급급해 이 같은 참사가 벌어졌다. 무엇보다 우수한 학생, 국가 연구비를 독점하다시피하는 대학과 국책 연구기관이 이런 짓을 하고 있으니 죄질이 결코 가볍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 모든 게 현재 연구업적 평가체계에서 자생한 병적현상이라고 진단한다. 연구현장을 외면한 과학기술 담당 부처 관료·행정직들의 탁상공론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과학기술계는 매해 20조원에 가까운 세금을 가져다 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그리고 일련의 사태를 지켜본 국민들 입장에서 연구비를 계속 지원하는 게 맞는지 고민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