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표현의 자유와 혐오할 자유

머니투데이 김익태 사회부장 2018.07.11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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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빠·충’은 우리 사회 대표적 혐오와 차별의 언어다. ‘꼴’과 ‘빠’는 극단과 맹목이다. 말 그대로 벌레를 의미하는 ‘충’에는 경멸과 무시가 내포됐다. 언론에 등장하거나 주변에서 사용되는 게 낯설지 않을 정도로 한국 사회에는 이처럼 수많은 혐오와 차별의 단어가 넘쳐난다.

이런 표현은 주로 댓글, 커뮤니티, 페이스북, 블로그 등을 통해 빠르고 광범위하게 퍼져나간다. 최근 들어선 성별, 계층, 지역, 종교, 인종, 민족, 정치 성향, 성적 지향 등이 다르다며 새로운 혐오와 차별의 표현을 만들어 가며 대립하고 충돌하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기존 표현에 비해 강도도 더욱 세졌다.



이런 표현이 문제가 되는 것은 대부분 사회·정치적 권력이 약한 장애인, 여성 등 소수자를 향하기 때문이다. 여성은 숫자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차별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소수자다.

대립과 갈등에서 나온 혐오와 차별의 표현은 일단 만들어지면 오히려 이를 더욱 심하게 선동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아니 그 자체로 폭력이다. 평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는 이들의 지위를 빼앗는 효과가 있다.



표현은 화자의 의도보다 내포된 효과가 더욱 중요하다. 의도와는 상관 없이 ‘김치녀’ ‘된장녀’ ‘개줌마’ 등의 말이 반복되면 여성은 원래 그런 존재란 이미지가 형성된다. 여자들을 열등한 지위로 만들어버린다. 처음엔 이상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반복 노출되면 어느 순간 사실로 인식된다.

이렇게 일상화된 표현들은 차별과 혐오를 넘어 데이트 폭력, 성폭력, 극단적으로 살인으로 까지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이런 표현이 유머로 소비된다는 점이 큰 문제다. 젊은 층에서 두드러진다. 자연스럽고 심지어 재밌는 것으로 인식된다.

이달 7일 서울 혜화동에서 열린 불법 촬영 편파 수사를 규탄하는 여성들의 집회는 홍대 몰카 수사가 남성이 피해자라 여성 피해자일 때보다 빨리 처리했다는 편파수사 인식에서 촉발됐다. 수긍할 순 없다. 하지만 그간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여성혐오와 성차별, 성폭력을 없애자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고 이해하고 있다.


문제는 “편파 수사가 아니었다”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벌어졌다. ‘문재인, 재기해’, ‘곰’ 등의 구호를 외치며 문 대통령에게 자신들의 목소리에 제대로 된 응답을 촉구했다. ‘재기해’는 2013년 고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가 마포대교에서 퍼포먼스를 벌이다 숨진 상황을 빗댄 은어다. 글자 ‘문’을 거꾸로 향하게 만들어 ‘곰’도 만들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 트라우마가 있을 문 대통령이다. 대통령이어서가 아니다. 어떤 집회에서 건 자살하라는 구호가 나와선 안 된다.

일부 참가자들이 이렇듯 혐오와 분열, 갈등의 언어를 사용한 것은 큰 문제다. 집회를 주최한 '불편한 용기' 운영진은 여성 전체를 싸잡아 조롱하던 남자들의 혐오와 차별의 언어를 반대로 비추는 거울처럼 비틀어보자는 미러링(mirroring)이라고 했다. 취지는 이해하지만 그래도 도를 한참 넘어섰다.

그간 여성이 당해온 것을 생각하면 문제 될 게 없다는 식의 성 대결 양상으로 번져버리면 집회 취지는 퇴색하고 출구는 없어진다. 우리에겐 표현의 자유가 있을 뿐이지 ‘혐오할 자유’는 없다. 혐오의 표현은 상대를 나와 동등한 권리를 지닌 인간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인권의식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세계 각국에서 혐오 표현을 법으로 규제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금지하고 처벌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차별과 혐오를 낳는 구조적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번 칼럼을 두고 한 지인은 “그러다 ‘진지충’으로 공격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렇다. 누군가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우린 모두 또 다른 누군가에게 ‘꼴’ ‘빠’ ‘충’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광화문]표현의 자유와 혐오할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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