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쿨하게, 음악은 힙하게"…DMZ달리는 음악열차

머니투데이 배영윤 기자 2018.06.21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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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기획처장·DMZ피스트레인뮤직페스티벌 공동 조직위원장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기획처장./사진제공=한국예술종합학교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기획처장./사진제공=한국예술종합학교


남북 평화 분위기가 이렇게 쉽게, 빨리 퍼질 줄 누가 예상했을까. 70년이라는 오랜 세원 동안 실현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많은 일들이 단 7개월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연달아 일어나고 있다. 세계 각국의 뮤지션들이 전쟁의 공포와 정적이 스민 비무장지대(DMZ)에 모이는데 걸리는 시간은 5개월여로 그보다 짧았다.

"평화를 주제로 DMZ에서 음악 페스티벌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젊은 세대들에게 새로운 메시지로 다가온 것 같았어요.“



21일부터 24일까지 열리는 제1회 DMZ피스트레인뮤직페스티벌(이하 DMZ페스티벌)의 공동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기획처장은 "북한 김정은 위원장 얼굴을 (생중계로) 보고, 평양냉면 먹는 모습을 보면서 '평화가 우리 일상에 있구나' 느꼈다"고 말했다. 평화를 너무 진지하고 무겁고 어렵게 여기지 말자는 생각으로 추진한 행사가 바로 'DMZ페스티벌'이다.

'평화=쉽고, 재밌고, 즐거운 것'이라는 공식을 음악이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그는 "이번 축제 슬로건도 '평화는 쿨하게, 음악은 힙하게'라 정했다"고 말했다.



축제 준비는 이 위원장과 함께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글로벌 음악축제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의 메인 프로그래머 마틴 엘본이 지난해 잔다리페스타를 계기로 내한했다가 비무장지대(DMZ)를 방문, '이곳에 뮤직 페스티벌을 열자'면서 지난해 말부터 약 5개월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엘본이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DMZ의 매력, 축제의 취지 등을 열정적으로 '광고'한 덕에 글로벌 아티스트들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강원도, 서울시, 문체부가 힘을 보탰다. 영국 펑크록 밴드 섹스 피스톨즈 출신 글렌 매트록을 비롯해 제노비아(팔레스타인), 미츠메(일본), 폼 비푸릿(태국) 등 해외 뮤지션과 강산에·이승환·장기하와얼굴들·크라잉넛·안무가 차진엽 등 국내 유명 아티스트들의 자발적 참여로 가속도가 붙었다.

보통 음악 축제의 반도 채 되지 않는 예산과 준비 기간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DMZ페스티벌' 첫 발을 내딛을 수 있는 건 다른 축제와 차별되는 '메시지'가 있어서다.


"축제에 참여함으로써 '우리도 평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 한반도 평화의 주인공은 나다'라는 생각을 하더라고요. 소위 '메가톤급' 아티스트가 오는 건 아니지만 그런 메시지를 편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다른 축제와 가장 큰 차별점이죠."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기획처장./사진제공=한국예술종합학교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기획처장./사진제공=한국예술종합학교
또 다른 특징은 '이동형 페스티벌'이라는 것. 서울 창동, 노동당사, 강원도 철원 고석정 등에서 콘퍼런스, 쇼케이스, 라이브콘서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서울역에서 출발해 철원 백마고지까지 달리는 기차 안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그림 그리는 퍼포먼스는 축제의 백미다.

이 위원장은 "DMZ는 그간 남북의 심각한 상황을 상징하는 곳이지만, 물리적 거리와 장소의 개념을 떠나 북한에 대한 부정적 생각과 편견을 갖고 있던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DMZ가 있었던 게 아닐까"라며 "'페스티벌 온 더 로드'(길 위의 페스티벌) 개념의 축제를 기획한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언젠가는 평양에서도 할 수 있고, 평화를 외치는 음악인·운동가들이 서울에서 열차를 타고 런던까지 가는 페스티벌에 대한 기대감도 있다"고 덧붙였다.

'문화비전 2030'(정부의 새 문화정책) 준비단장,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이 위원장은 "대치된 상황 속에서 대화의 분위기를 온화하게 만드는 것이 '문화와 예술'의 역할"이라며 "다만 정치·경제·군사적 대립을 해소하는 수단과 방법 만으로 생각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문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하고, 통일의 궁극적인 목표 역시 그동안 격차가 벌어진 남북 문화의 일상이 서로 어색하지 않게 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주도하는 경직된 문화교류보다 민간 영역에서 기획되는 행사들이 많아져야 좀더 자유로운 문화 교류가 활성화 될 거예요."

DMZ페스티벌이 문화교류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거라는게 이 위원장의 기대다. DMZ를 가로질러 평화를 향해 달리는 열차는 시동이 걸렸고 서서히 속도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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