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 같은 창작음악을 기다리며…

머니투데이 천현식 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 2018.05.26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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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천현식 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 "평화라는 문화적 의미가 생긴 ‘평양냉면’…평화와 통일의 또다른 방법"

2018 평창 동계올림픽·패럴림픽 성공 기원 삼지연관현악단의 강릉 특별공연(2월 8일 강릉아트센터 사임당홀) 당시 오랜만에 남측에서 열리는 북측 악단의 공연을 보기 전 설레는 마음을 안고 객석에 앉아 있는데, 웅성대는 소리와 함께 카메라 불빛이 번쩍번쩍 거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당시 최고의 화제를 몰고 다니던 현송월 단장이 공연장으로 들어오는 것 아닌가? 나중에 보니 최문순 강원도지사, 추미애 민주당 대표 등도 있었지만, 당시는 현송월 단장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현송월 단장이 앉은 곳은 내 자리 뒤의 바로 오른쪽 자리였다. 음악연구자로서 기쁜 마음과 함께 터지는 불빛 때문에 고개를 숙이면서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공연을 보는 내내 현송월 단장과 옆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도 관심이 갔다. 처음 시작 전 장룡식 지휘자가 나올 때 추미애 당대표가 현송월 단장에게 누군지를 물어보고 현송월 단장이 나이와 함께 장룡식 지휘자를 소개하는 대화를 들었다. 나는 속으로 현재 북한 최고의 장룡식 지휘자라고 중얼거렸다. 어찌 보면 이렇듯 당시 추미애 당대표와 함께 남측의 관객들 대다수는 연주자와 가수, 지휘자가 누군지, 심지어는 공연 곡목도 모르고 공연장을 찾았다. 본래 우리가 공연장을 찾을 때는 공연 이모저모를 꼼꼼히 따져보고 갈 것이다. 소중한 시간을 내서 가는 공연인데, 무엇인지도 모르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당시 공연장을 찾았던 건 북측 예술단이 남쪽에 와서 공연을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기쁨과 호기심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앞으로 우리는 계속해서 북측과 만날 것이고 만남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계속해서 그런 당위적 기쁨만을 기대하거나 준비해서는 안 된다. 다음 공연 때는 연주자와 가수, 지휘자, 곡목 등에 대해서도 미리 알고 공연을 보러 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제대로 감상이 될 것이다. ‘두 번째 곡은 고음단소 주자가 독주 부분에서 소리를 더 세게 냈어야 했었다.’라든가 하는 평을 하면서 말이다. 남북의 교류도 이와 마찬가지이리라 생각한다. 통합과 통일을 위한 ‘교류-협력-논쟁’을 서로 해야 하지만 그 전에(교류를 진행하면서도) 각자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현실파악과 서로에 대한 이해’이다. 그렇지 않고 당장 교류를 하기만 하면 의사소통도 어렵고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사실 이것은 만남을 준비하는 사람의 당연한 자세이면서도 그 만남을 나의 것,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지난번에도 기고에서도 말했듯이 국립국악원에서는 이렇게 만남을 준비하는, 즉 북한음악에 대한 이해를 위한 학술회의와 공연을 2014년부터 개최하고 있다. 북한의 민족기악과 민족성악, 민족무용에 이어서 올해 가을에는 민족가극을 준비하고 있다. 그 밖에도 다른 기관이나 단체들에서도 앞으로 북한 관련 행사들을 준비할 것이다. 지난 남북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응원하며 주변 식당을 찾아 평양냉면을 먹었듯이 개개인들이 관련 행사를 찾아 그 마음을 이어나갔으면 한다. 그렇게 되면 다음 북측의 공연을 볼 기회가 되었을 때 조금 더 재미있게 공연을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재미있는 관람을 넘어서 만나야할 상대방을 위한 준비이기도 하며 또 다른 만남의 방식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정들이 쌓여야 만남과 교류가 표면적인 한반도의 평화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을 살찌우는 통합의 결과로 돌아올 것이다.



음악연구자로서는 음악계에서도 이번 정상회담 때 평화라는 문화적 의미가 생긴 ‘평양냉면’과 같은 음악이 앞으로 생기기를 바란다. 나아가 교류를 통해 남북이 함께 평화와 통일의 문화적 의미가 담긴 창작곡을 만들어 낼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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