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넘치는 혁신 적기…신진연구자 '성장판' 자극하라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2018.05.23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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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과학자가 힘이다-①]도전 돕는 新지원제도

편집자주 우리나라는 지난해 과학기술혁신역량 평가에서 네덜란드에 6위 자리를 내주고 한계단 물러났다. 2006년부터 이어져온 성장세가 처음 꺾인 것이다. 과학기술혁신역량평가는 미래 성장 잠재력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 꼽힌다. 문제는 이번 하락세가 일시적 현상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4차 산업혁명 관련 여러 지수에서 한국의 성적표는 좋지 않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R&D(연구·개발) 투자 규모가 세계 1위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혁신역량은 정체 또는 퇴조 움직임을 보인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문제의 핵심을 혁신 성장의 출발점인 ‘창의·도전적인 R&D’에서 찾는다. 원동력은 청년 과학자들이다. 잠재력 있는 청년 과학자들이 원하는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 위한 방안에 대해 심층 진단해봤다.

아이디어 넘치는 혁신 적기…신진연구자 '성장판' 자극하라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특수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나이는 26세.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영국 에든버러대 피터 힉스 교수가 ‘힉스 입자’의 존재를 밝혀낸 최초 논문을 썼을 때 나이도 36세다. 노벨과학상 수상자 절반 가량이 30세 전후 신진연구자 시절에 개척한 연구 결과로 수상했다는 통계도 있다.

청년 과학자를 과학기술계에선 ‘신진 연구자’로 분류한다. 미래 핵심 연구자로 성장 가능성이 풍부한 젊은 과학기술 인력을 통칭하는 용어로, 만 39세 이하 또는 박사학위를 취득한 지 7년 이내인 연구소 연구원 및 이공학 분야 대학교수가 이에 속한다.



전문가들은 이 때가 연구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말한다. 도전적인 아이디어가 많고 연구의욕 또한 높기 때문에 일찌감치 장기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준다면 글로벌 수준의 연구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소형 한국연구재단 연구원은 “똑같은 연구비를 지원했을 때 30대 교수의 성과가 더 뛰어난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정부·지자체·대학연구비 수혜비율 보니…젊은 교수 ‘한자릿수’=과학기술계 전반으로 미래의 연구활동을 주도할 신진연구자를 육성해야 한다는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국내 젊은 과학자가 충족한 연구비를 지원받기는 쉽지않다. 정부·지역자치단체·대학 등이 지원하는 연구비 대부분이 연구실적이 높은 중견급 교수들에게 쏠린다.



한국연구재단이 발간한 대학연구활동실태조사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6년 중앙 정부 지원비를 가장 많이 받은 상위 10%(7446명) 교수를 분석한 결과 평균 나이는 51세로, 이들이 전체 연구비의 82%를 가져갔다. 반면 신진연구자가 지원을 받은 경우는 전체 예산의 4.4%에 그쳤다. 총 3687억원 규모의 전체 교내연구비도 50대 38.1%, 40대 35.9% 순으로 지원받았으며, 39세 이하는 9.0%에 불과했다.

차두원 한국과학기술평가원(KISTEP) 연구위원은 “논문실적 평가 등을 통해 연구비 지원대상을 뽑는 기존 선정 방식은 신진연구자에게 불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또 “교내 연구비만큼은 외부에서 연구과제를 타오기가 어려운 신임 교수 정착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쓰이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벨상의 본고장인 스웨덴에선 국가 R&D 예산 중 개인 연구비의 약 30%를 신진연구자들을 위해 쓴다. 스웨덴연구협의회(VR) 측은 “R&D 예산 배분에 있어 가장 우선된 심사 기준은 연구 아이디어의 우수성”이라며 “신진연구자들이 자신이 낸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데 필요한 충분한 금액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아이디어 넘치는 혁신 적기…신진연구자 '성장판' 자극하라
◇‘생애 첫 연구비’ 등 신진 위한 신제도 잇단 도입=과학기술정책 전문가들은 정부 투자의 효율성을 고려할 때 중년 연구자에게 연구비가 쏠리는 불균형 현상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신진연구자를 위한 연구비 지원 혜택을 늘릴 수 있는 다양한 사업정책들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다행히 현 정부들어 신진 연구자를 위한 지원책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우선 이공계 신진연구자를 지원하는 ‘생애 첫 연구비’ 제도를 마련했다. 이는 기초연구과제 수혜 경험이 없고 4년제 대학에 재직 중인 만 39세 이하의 전임 교원을 대상으로 매년 3000만원씩 최대 3년간 지원한다.

청년 과학자가 창의적·도전적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자유공모형 연구지원을 늘리고, 우수 신진연구자를 대상으로 자신의 실험실을 마련하는 데 드는 연구시설·장비구매비를 지원하는 ‘최초 혁신실험실’ 사업도 신설했다.

박사 후 연구원이 출연연 연구과제 참여기간에 따라 최소 2~3년의 고용을 보장하는 ‘과제기반 테뉴어’도 새롭게 도입하는 한편, 중소기업 R&D 부서에 취업하는 청년 과학기술인을 위한 연금제도도 올해 첫 시행한다.

과기정통부 이진규 1차관은 “새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을 보여주는 100대 국정과제 중 과학기술 관련 핵심사항 중 하나가 청년 과학자 지원을 통한 미래역량 확충”이라며 “그동안 충분치 못했던 청년 과학자 지원 문제, 초기 연구비 지원 확대, 평가체계 개선 등을 핵심지표로 구체적인 실행안을 현장에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자녀 1명당 2년 연장”…가족생계도 살피는 선진국=젊은 과학자들이 창의·도전적인 연구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정책을 내놓는 것은 비단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해외 주요 선진국들도 우수 신진연구자를 세계 수준의 연구자로 양성하기 위해 가족 부양사항까지 고려하며 세밀한 부분까지 챙기고 있다.

독일의 경우 2005~2015년 독일 신진 과학자의 절반 이상이 1년 이하 연구 프로젝트 계약으로 고용돼 직업 안정성을 보장해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독일 정부는 2016년부터 박사과정 학생이나 박사후 연구원의 고정된 계약기간을 명시하는 내용의 ‘과학기간계약법’을 개정, 신진연구자가 최대 6년까지 고용을 보장받도록 했다. 또 연구자의 가족 부양 상황도 고려해 아이 양육에 따라 계약 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자녀 한 명당 2년 연장이 가능하다.

일본은 박사 과정 학생들이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도록 지원하기 위해 RA(Research Assistant)제도를 도입하고, 대학이 젊은 연구자를 임시로 채용, 독립된 연구환경에서 경험을 쌓게 한 뒤 실적심사를 통해 종신 고용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세계적인 연구기관인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와 일본 이화학연구소(리켄) 등도 신진연구자들이 생계의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지원한다. 이를테면 막스플랑크연구소는 5년간 연구실 비용과 더불어 미국 조교수급에 해당하는 연봉을 지급한다. 일본 이화학연구소(리켄)는 기본 5년, 최대 7년까지 연간 1000만엔(약 9700만원)의 연봉을 제공한다.

김상선 한양대 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신진연구자 지원은 향후 응용 잠재력을 지닌 연구분야에 씨앗을 심는다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며 “이번 정부에서 시작한 신진연구자 지원제도가 현장에 뿌리내릴 수 있게 관리하고, 앞으로도 현장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반영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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