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펜도스 원형극장/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
이 사고를 계기로 안탈리아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서 기억을 더듬어 본다. 안탈리아는 터키의 남부 지중해 연안의 도시로 상주인구가 100만 명이 조금 넘는다. 하지만 여름철에는 인구가 크게 늘어난다. 유럽 등지에서 휴가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코발트색의 바다, 연중 300일 이상 맑은 날씨, 부드러운 백사장 등이 관광객과 여행자들을 불러 모은다. 겨울에도 기온이 크게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찾는다. 국내 축구단의 동계훈련지로도 알려져 있다.
특히 안탈리아 인근에는 로마시대 유적이 많다. 그중에서도 내 기억에 특별하게 남은 곳은 아스펜도스다. 안탈리아에서 동쪽으로 47㎞ 떨어진 이곳 역시 고대 유적들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조그만 마을일뿐이지만 한 때 항구도시 시데와 상권을 놓고 우열을 겨뤘을 정도로 번영을 이뤘다. 유적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원형극장이었다. 화려했던 도시는 사라졌지만 이 거대한 극장은 거의 완벽하게 보존돼 있어서 세계 각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원형극장의 맨 꼭대기에 있는 회랑/사진제공=이호준 여행작가
무대에는 다섯 개의 문이 있는데 중앙 문으로는 연극 감독관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 아래로 난 작은 문들로는 검투사와 싸우는 맹수가 드나들었다. 생각해 보면 죽음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문이었다. 그 피의 향연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과, 운명적으로 피를 흘려야 하는 생명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여행을 하다보면 복잡한 생각이 교차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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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는 음향효과를 위해 나무 지붕이 드리워져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 극장 역시 긴 세월을 버텨오면서 우여곡절과 시련이 있었다. 비잔티움 제국 시대에는 교회로 개조된 적이 있었고 셀주크투르크 때에는 실크로드를 오가던 카라반(대상)의 숙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13세기에는 술탄(알라딘 케이쿠바드 1세)의 별장으로 쓰였다.
지금도 여름 시즌엔 오페라 재즈페스티벌이 열리는데, 설계가 얼마나 잘 돼 있는지 마이크를 설치하지 않아도 객석 어디서든지 잘 들린다고 한다. 객석으로 올라가는 길은 무척 가팔랐다. 꼭대기까지 기다시피 올라갔다. 맨 위에서는 무대 쪽 사람들의 모습이 인형처럼 조그맣게 보였다. 거대한 규모에 감탄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무대 한 가운데에 서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 이럴 수가. 그 먼 곳에서 부르는 노랫소리가 똑똑하게 귀에 들어왔다. 한 마디로 설계의 승리였다.
꽤 오래 전에 다녀왔지만, 안탈리아와 아스펜도스는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있는 곳이다. 이번에 참사를 당한 분들도 이곳을 다녀오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세상 모든 여행자들의 안전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