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지혜 기자
정신장애가 있는 강씨는 나이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사실 이씨나 김씨인지도 모른다. 40대로 추정되는 1993년 경찰서를 통해 부녀보호소에 입소했고, 몇 군데의 정신병원을 거쳐 1996년 정신요양시설에 입소해 20년 넘게 지내고 있다. 60~70년을 대한민국 영토안에서 살았지만 주민등록이 없다. 노환 때문에 병원 갈 일이 많아지는데 신분이 없어 노인장기요양서비스를 신청할 수가 없다.
알콜중독인 전씨는 오랫동안 거리노숙을 했다. 아웃리치를 통해 거처를 쪽방으로 옮기고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했다. 그런데 가족 중 누군가가 실종신고를 해 사망한 것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실종선고 취소소송을 하고 주민등록 신고를 하자 소장이 날아왔다. 실종기간 중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전씨에게 상속된 재산이 있었다. 소장을 보낸 전씨의 형제는 실종기간 중 전씨의 상속재산을 관리하느라 돈이 많이 들었으니 전씨가 상속한 부동산의 50%를 내놓으라 했다.
강씨와 송군, 전씨, 황씨는 나라 없는 사람이다. 혹은 그냥 없는 사람이다. 스스로 국가라는 속박을 벗어던진 것이 아니라 국가로부터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이다. 과거 공적기록부를 일일이 수기로 기록하고 보관하던 시절의 이야기라면 좋겠지만, 일괄적으로 공적기록부를 전산화하는 과정에서 누락된 소수의 이야기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재진행형으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다. 경찰이나 사회복지사의 도움으로 국적이나 신분이 생겼다면 그 사람은 매우 운이 좋은 것이다. 여전히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국적도 신분도 없이, 행려환자 관리번호 혹은 그마저도 없이 살고 있는 사람이, 그래서 잘 보이지 않고 셈해지지 않는 사람이 정말로, 꽤, 많다.
태어나면 당연히 주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국가와 신분. 그것이 없는 사람은, 역으로 그 당연한 것이 없기 때문에 찾아가는 과정이 시작부터 녹록치 않다. 실종선고 취소청구, 성본창설 신청, 가족관계등록부 창설 신청, 주민등록 신고, 친자관계 존부확인청구, 인지청구, 파양청구, 출생신고 등등. 이 가운데 기본적으로 3개 이상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누군가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면 애초에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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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강씨와 송군은 성본창설을 이루었다. 강씨는 김씨와 이씨 사이를 방황하다 강씨로 정착하여 노인장기요양서비스를 받게 되었다. 송군은 발견된 지역과 당시 병원장의 성을 본따 새로운 성본의 시조가 되어 시설로 옮기고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전씨는 형제에게 상속재산의 20%를 주고 소송을 끝냈고, 황씨는 교회의 도움으로 고시원에 거주하면서 수급신청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다행하지 못한 사람이 여전히 많이 있다. 다행한 일은 사실 당연한 일이어야 한다. 다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 불행한 사람은 사실 부당한 일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 책임의 주체는 누구일까. 부디 국가라고 쉽게 속단하지는 말자. 정신질환자, 장애인, 홈리스와 함께 살고 싶어 하지 않는 모두가 공범일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