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호 前 국정원장 "특활비가 뇌물? CIA 예산은 초법적"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2018.04.26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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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검찰, 이병호·남재준 전 원장에 징역 7년, 이병기 전 원장에 징역 5년 구형

이병호 전 국가정보원장./ 사진=뉴스1이병호 전 국가정보원장./ 사진=뉴스1


박근혜정부에 특수활동비를 상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병호 전 국가정보원장이 검찰로부터 중형을 구형받고 "미국 CIA(중앙정보국)의 예산 사용은 초법적"이라며 기소를 비판했다.

이병호 전 원장은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성창호)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최후진술 기회를 얻고 "정보활동의 특성에 대한, 그 부분에 대한 사건은 아주 심각하게 다뤄야 한다는 개인적인 소견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CIA의 예를 들었다.



이병호 전 원장은 "CIA는 예산 사용에 거의 초법적"이라며 "'블랙 버짓'이라고 해서 각 정부 부처에 예산을 숨겨놓고 있으며, 서로 예산 지원을 주고받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CIA 부장은 정부 예산을 사용함에 있어서 미국 내 어떤 법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CIA 부장이 자금 지출을 확인하면 그것이 정당하다고 규정돼 있다. 그게 CIA의 운영 현황"이라고 했다.

이병호 전 원장은 "제가 이 말을 드리는 것은 정보기관, 정보활동의 특수성은 보호해야 한다는 정신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라며 "국정원 내에서 쓸 수 있는 돈을 대통령에게 줬기 때문에 이 사안을 뇌물, 횡령으로 다뤄야 할 것인지에 대해 저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항변했다.



함께 기소된 이병기 전 원장도 "국고를 횡령해 대통령, 기획재정부 장관, 청와대 정무수석, 정무비서관에게 뇌물이나 제공하는 파렴치한 사람으로 기소돼 이 자리에 서있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병기 전 원장은 "국정원 특활비를 이 사건과 같이 사용한 게 잘못된 것이라고 재판부가 판결을 내린다면 어떤 쪽이든 달게 받겠다"면서도 "그러나 불법이라고 해도 후배들에게 뇌물이나 제공하는 파렴치한 범죄자라고 평가를 받는 것만큼은 정말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남재준 전 원장은 "40년 군 생활 중 30년을 야전에서 작전 근무를 했다. 예산 관련은 백지 상태였다. 국정원장 특활비 문제가 나왔을 때 추호도 위법성을 몰랐다"라고 했다. 책임은 인정하지만 범죄의도는 없었다는 취지다.


다만 남재준 전 원장은 당시 친정부 성향 집회를 벌이던 경우회를 지원하도록 사기업을 압박했다는 혐의에 대해선 "보수단체에 호감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보수 색채를 갖고 권력을 남용해서 불법 자행했다는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부인했다.

이날 검찰은 이병호 전 원장과 남재준 전 원장에 대해 각 징역 7년을, 이병기 전 원장에 대해 징역 5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국정원이 청와대와 유착하면서 국민을 위한 안보수호 기관이 아닌 대통령이라는 권력자의 사적 기관으로 전락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을 초래했다고도 볼 수 있다"며 엄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국정원장 재직 시절 정기적으로 청와대에 특수활동비를 상납한 혐의로 기소됐다. 남재준 전 원장은 6억원, 이병기 전 원장은 8억원, 이병호 전 원장은 19억원을 상납했다고 한다. 이 특활비는 2016년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 내 친박 계열 인사들을 당선시키기 위한 불법 여론조사 등에 쓰인 것으로 파악됐다.

또 남재준 전 원장은 "VIP(대통령) 관심사안"이라며 이헌수 전 기획조정실장을 시켜 당시 친정부 집회를 활발히 개최하던 경우회를 지원하도록 현대기아차그룹을 압박한 혐의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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