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부터 택배 배달을 한 발달장애인 이민선씨(27)가 고객에게 택배를 건네고 있다. 환한 웃음도 잊지 않았다./사진=남형도 기자
18일 오후 1시40분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위치한 한 아파트. 파란 조끼를 입은 이민선씨(27)가 양팔 가득 택배상자 3개를 안고 좁다란 복도를 걸었다. 다부지고 빠른 발걸음이었다. 그리곤 한 집 앞에 멈췄다. 문을 정확히 세 번, 힘차게 두드리며 택배가 왔음을 알렸다. 인기척이 없자 그는 한 번 더 반복했다. 잠시 뒤 집주인이 나오자 이씨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눈가의 해맑은 눈주름이 보는 이를 기분좋게 했다. 이씨는 큰 상자 2개를 두 손으로 차분하게 건네고, 어디에 사인을 해야 하는지 설명해줬다. 집주인 A씨는 "요즘 택배기사들은 택배를 현관문 앞에 집어던지고 가는데, 어찌나 친절하고 싹싹한지 매번 기분이 참 좋아진다"고 칭찬했다.
2013년 11월부터 택배 배달을 시작한 발달장애인 이민선씨(27)가 30분 만에 한 동에 배달할 택배 18개를 모두 전달했다. 비워진 택배 배달상자./사진=남형도 기자
집에 없는 고객에게는 택배가 왔음을 알리기 위해 우편함에 '택배'라고 적힌 포스트잇을 붙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사진=남형도 기자
18일 오후 1시. 노원구립장애인일자리센터에 CJ대한통운 택배가 도착하자 발달장애인 기사들이 동별로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시행 초기에는 우려도 컸다. "왜 굳이 위험하게 이런 일을 하느냐"며 핀잔을 듣는 것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이재환 센터장에게는 소신이 있었다. 이 센터장은 "비장애인들이 일을 다 해주는 것이 아닌, 발달장애인 스스로 일을 해내고 보람을 느끼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고 말했다. 이에 택배를 해보자고 밀어붙였다.
18일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발달장애인 택배기사와 직접 동행해봤다. 오후 1시, 택배 차량이 그날 물량 700여개를 하차하자 발달장애인 직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밑으로 뛰어내려갔다. 잔뜩 쌓여 있던 택배 꾸러미는 허은정 대리(28)의 지휘 하에 30분만에 동별로 분류가 끝났다. 택배 스티커를 떼고 어디로 배달할지 아파트 층별로 장부를 적는 일이었다.
발달장애인 택배기사 남영주씨는 405동 배달 담당이다. 18일 배달할 405동의 배달 리스트를 크고 또박또박 예쁜 글씨로 적고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발달장애인에게 택배 일자리는 큰 의미가 됐다. 우선 자립을 위한 일자리 측면이다. 이 센터장은 "일반인 취업률이 60%, 장애인 취업률이 40% 정도인데 발달장애인 취업률은 20%도 안된다"고 설명했다. 택배를 배송하고 난 뒤 느끼는 성취감, 자부심도 대단히 높다. 이 센터장은 "바깥으로 나가 일하고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훨씬 쾌활해지고 지능도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지적장애 2급인 허은정 대리(28·가운데)는 인강원에서 폭행 등을 겪은 뒤 2014년 노원구립장애인일자리센터로 왔다. 4년이 지난 지금은 월 150만원을 벌 정도로 택배 작업관리를 능숙하게 잘한다./사진=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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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인강원이 장애인 폭행 문제로 운영이 정지되면서 2014년 노원구립장애인일자리센터에 입소했다. 허 대리는 입소 당시만 해도 월급이 12만원에 불과했지만 하루에만 혼자서 택배 4~5개 동에 70~78개를 배달할 정도로 업무 능력이 뛰어났다. 다른 발달장애인 택배기사가 1~2개 동에 20여개 배달하는 것과는 천지차이였다. 그의 월급은 올해부터 157만원으로 올랐고, 장애인임대아파트에 집도 한 채 얻어 독립해 생활하고 있다.
발달장애인 택배 사업은 최근 논란이 불거진 '다산신도시 택배'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도 꼽힌다. 일정 거점에만 택배를 배달해주면, 발달장애인 기사들이 능숙한 실력으로 동네 집집마다 배달해주기 때문. 최근 호응을 얻고 있는 실버 택배와 같은 이치다. 실제 발달장애인 기사 당일 배달률은 99%, 비장애인 기사 당일 배달률은 95%로 실적 면에서도 경쟁력이 좋다.
이 같은 호응에 힘입어 서울시는 발달장애인 택배사업을 올해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서울 노원·송파·강서·금천 등 4개 권역에 7개소로 택배 거점을 확대하고 일자리 수도 현재 23개에서 100개까지 늘린다. 노명옥 서울시 장애인일자리창출팀장은 "발달장애인들이 일자리를 갖게 되면 사회적 비용도 그만큼 줄어든다. 발달장애인을 그냥 두면 보호비용이 드는데, 일을 하면 발달장애인 스스로 돈도 벌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들의 보호자도 일을 할 수 있게 된다"고 정책의 효용 가치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