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날]봄 나들이객 떠난 자리, 쓰레기만 덩그러니

머니투데이 유승목 기자 2018.04.08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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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나들이 진상족-②]나들이철 시작되며 한강공원 '쓰레기 몸살'…'일탈'에 책임지는 시민의식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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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낮 기온이 20도까지 올라간 지난달 30일 서울 반포한강공원에 많은 인파가 몰려 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사진= 유승목 기자서울의 낮 기온이 20도까지 올라간 지난달 30일 서울 반포한강공원에 많은 인파가 몰려 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사진= 유승목 기자


활짝 핀 벚꽃이 봄이 왔음을 알린다. 너나 할 것 없이 나들이 채비에 한창이다. 퇴근 후, 혹은 주말 아침부터 한강공원을 찾아 봄을 만끽한다. 그러나 봄을 즐긴 이들이 무책임하게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이 있다. 악취와 쓰레기다.

◇강바람에 실려오는 쓰레기 악취= 봄 나들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 한강공원이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강공원을 찾은 이용객은 7575만5070명에 달한다. 특히 날씨가 풀리며 벚꽃이 피고 '서울 밤도깨비 야시장' 등 각종 행사가 열리는 4월에 이용객 수가 부쩍 증가한다.



올해 밤도깨비 야시장이 열린 첫날인 지난달 3월30일 저녁 8시쯤 서울 반포한강공원을 찾았다. 연일 '나쁨'을 보이던 미세먼지 농도가 옅어지고 낮 기온이 20도까지 오른 날이었다. 늦은 밤이었지만 수많은 푸드트럭과 상점이 공원을 밝혔다. 시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술과 음식을 즐겼다.

지난달 30일 밤 10시 찾은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 쓰레기들이 널려 있다. 쓰레기에 들어 있는 오물들이 흘러나와 악취가 진동했다. /사진= 유승목 기자지난달 30일 밤 10시 찾은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 쓰레기들이 널려 있다. 쓰레기에 들어 있는 오물들이 흘러나와 악취가 진동했다. /사진= 유승목 기자
잔디밭과 벤치를 둘러보니 곳곳에서 쓰레기가 눈에 띄었다. 나들이객들이 먹거나 마신 음식의 플라스틱 포장용기나 과자봉지, 젓가락 등이었다. 연인으로 보이는 20대 남녀는 자신들이 먹던 라면 용기를 잔디밭에 그대로 둔 채 자리를 떠났다. 용기에는 라면 국물이 가득 남아 있었다.



밤 10시에 찾은 여의도한강공원은 상황이 더 심각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모습이 목격됐다. 마시다 남은 술을 잔디밭이나 공용 쓰레기통에 쏟아붓기도 했다. 가까이 다가가니 고약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화단이나 전단지 수거함에 맥주캔을 꽂아놓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친구와 여의도한강공원을 찾은 이모씨(27·여)는 "기분 전환하러 왔는데 쓰레기가 널려 있고 냄새까지 심해 오히려 불쾌해졌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반포한강공원 '밤도깨비 야시장' 행사안내요원들이 쓰레기 분리수거를 독려하고 있다(사진 왼쪽). 지난달 31일 서울여의도한강공원 앞에 간밤에 쌓인 쓰레기가 쌓여있다. /사진= 유승목 기자지난달 30일 서울 반포한강공원 '밤도깨비 야시장' 행사안내요원들이 쓰레기 분리수거를 독려하고 있다(사진 왼쪽). 지난달 31일 서울여의도한강공원 앞에 간밤에 쌓인 쓰레기가 쌓여있다. /사진= 유승목 기자
◇단속 없으니 더 해= 이날 반포와 여의도한강공원 모두 밤도깨비 야시장이 열리며 많은 인파가 몰렸지만 무단 투기된 쓰레기양은 각각 달랐다. 대체로 반포한강공원을 찾은 많은 이들이 안내에 따라 야시장 내에 위치한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쓰레기를 버렸다.


차이는 단속 여부에 있었다. 반포한강공원은 야시장 관계자가 빨간 안내봉을 들고 쓰레기 분리·배출을 독려했다. 현장 관계자는 "이용객들이 대체로 안내에 따라 분리수거를 해주는 편"이라고 말했다. 친구들과 함께 먹은 치킨을 분리수거한 대학생 이모씨(23·남)는 "불빛도 밝고 안내원이 분리수거를 요청하니 함부로 버리기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의도한강공원 물빛광장 쪽에는 특별한 감독이 없었다. 이날 산책을 나온 허모씨(55·남)는 "쓰레기를 두고 가는 사람을 여럿 봤다"며 "날도 어둡고 무단투기를 단속하는 사람도 없어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17년 한강공원 내 위법행위 단속 및 계도 현황. /그래픽= 김지영 디자인기자2017년 한강공원 내 위법행위 단속 및 계도 현황. /그래픽= 김지영 디자인기자
하지만 이를 일일이 단속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쓰레기 무단투기로 6466건이 계도됐지만 과태료가 부과된 것은 8건에 불과했다. 한강공원 전체에 공원 내 불법행위를 단속하는 공공안전관이 150여명이 있지만 주차위반·불법 상행위 등 업무 범위가 넓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버리는 사람, 치우는 사람이 따로 있어야 할까= 고단한 것은 결국 이를 치우는 환경미화원뿐이다.

다음날(31일) 아침 쓰레기가 가득찼던 여의도 한강공원은 말끔해져 있었다. 컵라면 용기 하나 없었다. 한강공원 소속 환경미화원들이 이른 새벽부터 나와 쓰레기를 청소했기 때문. 수북이 쌓인 쓰레기를 청소하는데 투입된 인원은 20여명이었다. 이마저도 이용객이 증가하는 철이 되면서 늘어난 인원이다. 이들은 요즘 새벽 6시30분부터 밤 늦게까지 쓰레기와 사투를 벌인다.

지난달 31일 오전 10시 서울여의도한강공원의 모습. 쓰레기가 깔끔하게 치워져 있지만 오물 흔적이 남아 악취가 진동했다(사진왼쪽). 원효대교 밑 여의도한강공원 쓰레기장에서 오후 청소를 시작하는 환경미화원들. /사진= 유승목 기자지난달 31일 오전 10시 서울여의도한강공원의 모습. 쓰레기가 깔끔하게 치워져 있지만 오물 흔적이 남아 악취가 진동했다(사진왼쪽). 원효대교 밑 여의도한강공원 쓰레기장에서 오후 청소를 시작하는 환경미화원들. /사진= 유승목 기자
원효대교 밑 쓰레기 집하장에서 만난 환경미화원 이모씨(62)는 "벚꽃만 피면 설렘보다 한숨부터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제발 (이용객들이) 음식물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고 분리수거를 하면 좋겠다"며 "치우는 것도 힘에 부치지만 청소를 해도 여기저기서 나는 악취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고질적인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종된 시민의식을 되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강공원을 자주 찾는 윤모씨(61)는 "촛불집회나 월드컵때는 자진해서 쓰레기도 치우던 시민들이 한강공원에 놀러 오면 180도 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한강공원 관계자는 "강력한 단속도 중요하지만 수많은 인원이 몰려들어 한계가 존재한다"며 "시민 스스로 시민의식을 함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회학자인 고강섭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남에게 피해를 끼치면 안된다'는 것은 알지만 '여가'라는 개인적 일탈 속에서 이에 무감각해지는 경우가 많다"며 "공공질서를 위해 필요한 단속을 이어가는 가운데 시민의식을 함양할 수 있는 교육이 적극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빨간날]봄 나들이객 떠난 자리, 쓰레기만 덩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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