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팩트] ‘B급 신화’ 싸이는 왜 2번의 국가행사에서 빠졌나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8.03.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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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 평창동계올림픽과 평양공연 잇따라 참가 불발…한번은 ‘자의적’, 또 한번은 ‘타의적’

2018 평창동계올림픽과 평양 공연 등 정부 공식 행사에 잇따라 참가가 불발된 가수 싸이. /사진=이기범 기자2018 평창동계올림픽과 평양 공연 등 정부 공식 행사에 잇따라 참가가 불발된 가수 싸이. /사진=이기범 기자


가수 싸이(본명 박재상)는 ‘B급 문화’를 주류로 끌고 온 돌풍의 주인공이다. 남들 앞에서 하면 민망한 가사와 안무도 그가 손대는 순간, 희화화하기 십상이다. 이 덕분에 그는 훌륭한 가창을 지니지 않더라도 무대의 단골손님 ‘0순위’로 매번 초대됐다.

싸이의 가장 큰 장점은 어떤 무대라도 불러주면 “OK”하는 낙천적 마인드에 있다. 그가 2000년대 초반 대마초 흡입으로 자숙할 때 서울 시청에서 월드컵 응원 도중 방송사의 느닷없는 ‘부름’에 혼신을 다해 무대에 올라 열정적으로 노래한 일화는 그가 어떤 팬서비스를 체화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다.



‘댄스 가수’에게 어울리지 않는 록페스티벌 무대에 사상 최초로 오른 일화도 ‘감동적 장면’으로 회자한다. 2006년 인천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의 공기는 로커들의 소리와 태도에 초점이 맞춰졌다. 싸이는 이곳에 모인 관객들의 성향을 이미 의식한 듯 무대에 오르자마자 이렇게 얘기했다. “록 마니아이신 여러분들이 댄스 가수가 왜 록 무대에 서느냐고 의아하게 생각하실 수 있지만, 알고 보면 저도 로커를 꿈꾼답니다.”

시작은 어색했으나, 결말은 한몸이 되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싸이는 어색하거나 불편한 현장을 부드럽고 경쾌하게 풀 줄 아는 타고난 무대 적응자다. 그런데 최근 정부의 잇따른 공식 무대 현장에서 그를 만날 수가 없었다.



수많은 사람이 세계가 주목하는 정부 초청 공식 행사에 그의 호명을 원했으나, 모두 불발로 끝났다. 하나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고, 또 하나는 ‘남북 평화 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이다.

어떤 배경이 숨어있을까. 평창 동계올림픽의 불참은 싸이의 자의적 의사 때문이다. 송승환 총감독은 당시 싸이의 폐막식 무대 불참에 대해 “싸이 본인이 ‘강남스타일’을 계속 부르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며 “아시안 게임 때 (싸이가) 무대에 오른 뒤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래서 연예인이 참 힘들다”고 밝혔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은 국내외 비난이 가장 많이 쏟아진 행사였다. 주인공은 스포츠 선수들인데, 성화 주자부터 개회식 출연자까지 연예인이 대부분 장식하다보니, 혹평이 쏟아졌다. 싸이가 무대를 흥겹게 만드는 콘텐츠 내용과 상관없이 한류 스타의 대거 투입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지면서 싸이도 덩달아 비난을 받은 셈이었다.


가수 싸이. /사진=이기범 기자가수 싸이. /사진=이기범 기자
여기에 국제 행사와 ‘B급 문화’의 흥겨움이 서로 맞지 않는다는 비난이 가세하면서 싸이에게도 정부 행사 출연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은 것으로 관계자들은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강남스타일’을 계속 부르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싸이 관계자들은 고개를 저었다. 한 가요 관계자는 “어떤 노래든 기회가 주어지면 최선을 다하는 싸이 스타일을 고려할 때 맞지 않는 설명”이라며 “곡의 지겨움보다 행사 분위기가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전했다.

평양 공연에 참석하는 우리 예술단에서 싸이가 빠진 것은 ‘타의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싸이의 자발적 의사와 관계없이, 북측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난색을 표명했기 때문.

‘강남스타일’은 유튜브 조회수만 25억뷰가 넘을 정도로 전 세계인이 아는 보편적인 곡인 데다, 싸이의 미국 활동 등에서 보여준 자본주의 사상 등이 미칠 영향과 파급 효과에 대한 경계심이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특히 ‘말춤’으로 객석이 ‘청취’로 끝나지 않고 함께 즐기는 ‘행동’으로 비칠 획일적 움직임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가요 관계자들은 파악하고 있다.

우리 예술단 11개 팀의 면면을 보면, 레드벨벳 등 한류 스타를 포함해도 주로 아시아권에서 인기를 얻거나 한국에서 활동하는 ‘국한된 가수’의 이미지가 강한 반면, 싸이는 ‘세계적’, 특히 미국 등 자본주의 국가에서 인기를 얻어 ‘위험적’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는 것이다.

한 음반기획사 대표는 “무대 자체로만 보면 화합과 단결, 행복을 전파하는 최적의 가수인데, 자의반 타의반으로 출연 제약이 생긴 게 안타깝다”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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