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원유증산의 역설…표적 무역제재 안 통하는 이유는?

머니투데이 김신회 기자 2018.03.26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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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무역적자 절반 차지하던 원유 생산 늘렸는데 무역수지 더 늘어…"재정적자·소비 줄이고 저축 늘려야"

미국 산유량 추이(단위: 하루 천배럴)/자료=미국 에너지정보청미국 산유량 추이(단위: 하루 천배럴)/자료=미국 에너지정보청


2009년만 해도 미국의 무역적자 절반이 원유 수입에서 비롯됐다. 1970년대 말 절정이던 '오일붐'이 시들해지면서 30년간 산유량이 감소한 결과다. 미국은 2000년대 중반 하루 평균 1000만배럴이 넘는 원유를 수입했다. 국내 산유량은 수입량의 절반에 불과했다.

요 몇 년 새 불어닥친 '셰일붐'은 미국 원유시장에 '상전벽해'를 일으켰다. 미국의 산유량이 2011년 중반부터 2015년 중반까지 78% 늘면서 수입량을 넘어섰다. 급기야 2015년 말 미국 의회는 1975년 발동한 원유 금수 조치를 해제했다. 국제 유가는 2014년 중반 이후 반 토막 났는데 미국의 산유량이 급증한 게 주요 배경이 됐다. 미국은 머잖아 원유 순수출국이 될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5일(현지시간) 미국이 원유 수입에서 비롯된 무역적자를 극복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전체 무역적자는 오히려 늘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는 특정 수입품이나 국가를 표적으로 한 무역제재가 무역수지를 개선하는 데 효과적이지 않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수입산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 조치나 중국을 상대로 한 무역전쟁을 두고 한 얘기다.

제임스 해밀턴 미국 캘리포니아대(샌디에이고 캠퍼스) 교수는 "무역적자는 우리가 이 제품이나 저 제품을 수입한다고 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고 단언했다. 그는 무역수지를 결정하는 변수는 국내 소비와 생산이라며 국내 소비가 생산을 초과하면 수입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국내에서 저축이 투자, 즉 생산을 뒷받침하지 못하면 부족분을 외국에서 메워야 한다. 반대로 중국이나 독일처럼 저축률이 높은 나라들이 수출을 늘려 무역수지 흑자를 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해밀턴 교수는 미국의 재정적자도 문제 삼았다. 재정적자가 불어나 정부의 부채가 늘면 미국인들이 국채 투자를 늘려 소비가 줄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이 미국의 최대 채권국이 된 것처럼 미국 국채를 매입하는 건 재정수지가 탄탄한 수출국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규모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로 재정적자를 늘릴 태세다. 미국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소비를 북돋워 경제 성장을 자극하겠다는 것인데 소비 증가는 결국 무역적자 확대 요인이 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재정적자와 무역적자, 이른바 '쌍둥이 적자'는 오래전부터 미국 경제를 위협해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제재가 꼭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게 아니라고 항변한다. 불공정무역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인데 반론이 만만치 않다.

메간 그린 매뉴라이프앤드존행콕 자산운용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0년간 무역적자를 본 부자 나라들이 무역흑자국들보다 더 가파르게 성장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미국의 무역적자가 감소한 건 대개 불경기 때로 미국인들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 예로 미국의 무역적자는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경기침체가 한창이던 2009년 7090억달러에서 3840억달러로 거의 반 토막 났다. 지난 10년간 미국의 무역수지 개선이 거의 다 이때 이뤄졌다.

그린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정말 무역적자 문제를 해결하려면 거울을 보고 자국의 투자와 저축 지형을 어떻게 바꿀지 물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마이클 페롤리 JP모간체이스 미국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한 나라가 재정적자를 늘리며 소비자들이 계속 소비하길 바라면서 무역적자를 줄이는 건 불가능하다"며 "결국 재정정책이 무역정책을 지배할 것"이라고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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