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변협은 사법개혁 주체가 아닌 대상"

머니투데이 유동주 기자 2018.03.25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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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기관보고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한변호사협회의 업무보고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뉴스1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한변호사협회의 업무보고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뉴스1


대한변호사협회가 뜻하지 않게 난타를 당했다. 23일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기관보고에 참석하면서다. 여야 특위 위원들은 예상 외로 변협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에 나섰다. 변협도 개혁 대상이란 취지였다.

사법개혁에 관한 의견진술 목적으로 기관보고에 참석했던 변협 입장에선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애초 변협은 특위 대상기관이 아니었다. 사법행정기관이라 할 법무부·법원·검찰·경찰 4곳만 대상이었다. 변협은 법조 3륜의 일원으로 사법개혁에 동참하고 싶다며 의견진술 기회를 특위에 요청했다. 위원들도 이에 동의해 이날 기관보고가 이뤄졌다.


◇"제왕적 협회장 체제, 개혁 대상"



첫 질의에 나선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이 "변협은 개혁 대상이냐? 주체냐? 어떤 입장서 참석했느냐"고 묻자 김현 협회장은 "법조 3륜의 일원으로 의견을 내러 왔다"고 답했다. 변협이 '훈수'를 두러 왔다고 밝힌 셈이다. 그런데 바통을 이어받은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변협이 객관적인 심판자는 아니다. 변협도 사법개혁의 주체이자 대상"이라며 목소리를 높이자 현장 분위기는 급속히 냉각됐다. 이 의원은 "협회장이 추천 선임하는 위원들 중 법령에서 확인 가능한 것만 47명"이라며 '제왕적' 협회장으로 평가했다.

자료요구에 불성실하게 응한 것도 지적됐다. 특위 위원들에 따르면 변협은 "사법개혁 관련이 아니며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고 답하는 등 오히려 국회에 대해 고압적 자세를 보였다. 감사원 감사나 국회 국정감사 등 외부 통제를 받아 본 바 없던 탓이다.



외부 추천명단을 제출하지 않은 데 대해 이 의원은 "사법개혁 과제에 해당되는지 아닌지는 변협이 판단할 게 아니라 국회가 판단할 사항"이라며 자료제출을 자의적으로 거부한 것을 강하게 질타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 제출할 수 없다는 변협의 답변도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관계법령 등에 따르면 외부에 추천된 명단 수준의 자료는 다른 법령 근거가 있지 않은 한 개인정보로 보기 어렵다는게 국회 관계자들의 평가다. 게다가 공공기관인 국회가 업무 수행 목적으로 요구한 자료는 개인정보 보호 대상도 아니다.

이 의원이 추천 명단 등에 대한 자료제출을 거부한 것을 강한 어조로 지적하자 김 협회장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특위 위원들은 변협 추천 인사들이 대법관추천위원회 등 중요 사법 관련기구에서 발언권을 갖는 만큼 사법개혁과 무관하지 않다고 봤다.


◇공수처·상고법원 두고 오락가락 입장 변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상고법원 등에 대한 입장 변화도 문제가 됐다. 지난 2016년 초 테러방지법 찬성의견을 변협 명의로 내 논란을 일으켰다가 사퇴요구에 몰려 사과표명을 했던 하창우 전 협회장(현 법조윤리협의회 이사장)은 지난해 2월 퇴임 직전엔 공수처 반대 성명서를 낸 바 있다.


후임 김 협회장은 기관보고에서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공수처 설치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달라진 변협 입장을 내놓았다. 중요한 현안인 공수처에 대해 의견이 오락가락하는 점을 문제로 봤다. 특히 야당 위원들은 정권교체에 따라 시류에 편승하는 게 아니냐며 기회주의적 태도라고 지적했다.

변협은 회원 설문결과를 입장변화 근거로 내세웠지만 '86.5%가 공수처에 찬성한다'는 해당 설문은 지난해 5월에 시행됐던 것이다. 1년 가까이 밝히지 않고 비공개로 둔 셈이다. 결국 윤상직 자유한국당 의원은 설문관련 구체적 자료를 추가로 요구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추진하다 좌절된 상고법원 도입을 변협이 수정 전 자료보고에 찬성한다는 취지로 포함시킨 것도 문제됐다. 상고법원 내용이 문제되자 변협은 기관보고 전날 이 부분을 삭제한 새 자료를 제출했다.

검경수사권 조정에 대해 경찰의 인권의식 부족을 근거로 검찰 편에 선 것도 문제됐다. 경찰 수뇌부가 이를 문제삼아 지난 21일 변협을 항의방문하기도 했다.


2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된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이 물컵을 들고 서 있다. /사진=뉴시스2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된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이 물컵을 들고 서 있다. /사진=뉴시스

◇"변호사 징계·등록권한 남용…회수할 수도"

법무부 위임으로 변협이 행사하고 있는 변호사 징계와 개업등록 권한에 대해선 조정 필요성까지 언급됐다. 권한 남용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양심적 병역거부로 변호사 개업이 좌절된 백종건 변호사를 예로 들었다. 노 의원은 "법조비리나 파렴치한 범죄로 징계받은 판검사들에 대해선 개업을 허락한 변협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서만 엄격하게 적용한다"고 했다. 변협이 지난 3년간 변호사 등록을 거부한 사례는 백 변호사가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엔 이정렬 전 판사의 변호사등록이 변협에 의해 거부됐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도 개업신고가 반려되기도 했다.

노 의원은 "수사 기밀 누설로 징역형을 받았던 검찰총장, 가혹 행위로 피의자를 숨지게 검사, 변호사들로부터 뇌물을 받았던 국방부 법무관리관, 군산 법조 비리로 옷을 벗은 판사 3명 등 비리를 저지른 전관들의 등록은 받아들였다"며 "공익법인으로서 변협이 법령에 의해 보장받고 있는 각종 권한에 대해서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법무부가 변협에 위임해 놓은 변호사 징계권·등록권 등에 대한 회수까지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잇따른 집행부 임원 사건사고…"임원들 휴업하고 수임말라"

박범계 민주당 의원도 변협의 전 공보이사, 수석대변인의 사례를 들어 비판했다. 변협은 하창우 전 집행부 공보이사였던 임원이 불법 브로커 명의대여가 적발돼 법원으로부터 벌금형을 선고받은 지난해 1월, 과태료 1000만원으로 서둘러 징계를 마무리한 바 있다. 명의대여는 보통 정직에 처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솜방망이 징계인 셈이다.

박 의원 등에 따르면 문제가 된 전 공보이사는 하 전 협회장 측근으로 방송통신·언론중재 및 포털뉴스 제휴, 선거관련 중요 위원회에 겸임으로 위원을 맡았다. 명의대여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고 징계개시가 청구됐음에도 해당 공보이사는 직무정지가 되지 않았다. 변협 이사회 등에 계속 관여했고 전 협회장과 임기를 끝까지 함께 했다. 심지어 공직선거 관련 2곳의 위원회에 추천된 시점은 1심 선고 직후인 지난해 1월말이었다. 징계받은 변호사를 외부 중요 위원회에 추천한 셈이다.

현 집행부의 수석대변인이었던 변호사도 서울동부구치소 재소자 브로커 수임 의혹이 제기됐다. 김 협회장은 박 의원의 지적에 "최근 직무정지에 이어 사표를 낸 것은 사실이고 조사가 끝나면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답했다. 박 의원은 변협 고위 임원들의 이런 행태에 대해 "전관예우가 아니라 '현관예우'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 의원도 보충질의에서 집행부 임원들은 휴업을 통해 사건 수임을 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자체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법 개정으로 강제할 수 있다는 경고도 빼 놓지 않았다. 김 협회장은 "자체적으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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