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부를 대표하는 명문 듀크대 학생들의 성폭행 의혹 사건은 전국적 이슈가 됐다. 마이클 니퐁 지방검사는 뉴욕타임즈와의 전화 통화에서 "인종적 증오가 수반된 매우 혐오스러운 집단 성폭행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TV에 출연해 "그들이 데이트 성폭행 약물을 사용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성 발언까지 했다.
그해말 첫 재판을 앞두고 학생들의 결백이 드러났다. 피해자의 속옷에서 채취된 정액의 DNA 분석 결과가 나오면서다. 발견된 DNA 가운데 어떤 것도 학생들과 일치하지 않았다. 그제서야 니퐁 검사는 기소를 취소했다. 그러나 두 학생은 이미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뒤였다.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검사는 '정당한 목적'에 부합하는 범위 내에서 수사 정보를 언론에 제공할 수 있다. 여기서 정당한 목적이란 범죄 억제와 제보 요청 등이다. 선거 승리는 해당하지 않는다. 자신의 재선을 위해 확인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멋대로 공개한 니퐁 검사는 결국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하고 모욕죄로 구류형에 처해졌다.
우리나라는 검찰의 삐뚤어진 언론 플레이로 한명의 전직 대통령을 떠나보냈다. 2009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하루가 멀다하고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가족에 대한 의혹을 특정 언론사들에 흘렸고, 그 내용이 연일 대서특필됐다. '논두렁 시계'가 대표적이다.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까지 노 전 대통령이 얼마나 큰 수치심과 압박감을 느꼈을지 짐작조차 어렵다. 법무부와 검찰이 2010년 4월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을 제정한 건 이런 배경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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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공보준칙에 따르면 지검 차장검사 등 검찰의 공보담당관은 수사 중인 사건을 공보할 때 목적 달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사항만을 정확하게 공개해야 한다. 내용은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에 한정해야 한다. 또 언론사들에 균등한 보도의 기회를 제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검찰이 공개적으로 밝히기 어려운 확인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자신들과 유착된 특정 언론에만 흘려 피의자를 망신주고 압박하는 사태를 막기 위함이다.
대법원 판례를 봐도 검찰이 음성적으로 특정 일부 매체만을 통해 확인되지 않은 수사 정보를 유출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대법원은 2002년 9월24일 판결(2001다49692)에서 "수사기관의 언론 공표행위는 (중략) 객관적이고도 충분한 증거나 자료를 바탕으로 한 사실 발표에 한정해야 하고, 정당한 목적 아래 이를 공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 '공식절차'에 따라 해야 한다"며 이를 따르지 않는 수사기관의 언론 공표행위는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수사 정보 공개는 공식 절차를 통할 때만 '합법'이라는 뜻이다.
현실은 어떨까? 9년 전 노 전 대통령을 희생시킨 검찰의 음습한 언론 플레이는 과연 사라졌을까? 지금은 양성적이고 합법적으로만 수사 정보가 제공되고 있을까? 검찰의 대답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