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드 못지 않은 처월드…새내기 사위들 '눈치'

머니투데이 최동수 기자, 김영상 기자, 이동우 기자 2018.02.15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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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집안일에 처가 도움 받는 비중 커지면서 '처가 스트레스' 늘어

시월드 못지 않은 처월드…새내기 사위들 '눈치'


서울 동작구에 사는 결혼 3년 차 직장인 김모씨(33)는 설 연휴를 앞두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번 설연휴 때 장인·장모를 모시고 일본으로 2박3일 여행을 떠나기 때문이다.

3달 전부터 비행기 표를 사고 여행일정을 준비했지만 막상 출발을 앞두자 성격이 깐깐한 아내와 장인·장모가 마음에 들어 할지 걱정이다. 여행 내내 눈치를 볼 생각을 하니 벌써 머리가 지끈거린다.



음식·선물 준비, 시부모 눈치 보기 등으로 생기는 명절 스트레스가 더 이상 며느리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시댁 스트레스를 상징하는 '시월드'(시댁과 월드를 합친 신조어) 못지 않게 사위의 '처월드'(처가와 월드를 합친 신조어) 스트레스도 커지고 있다.

특히 젊은 맞벌이 부부들 중 처가에서 집안일과 육아를 지원해주는 경우에 많아 눈치 보는 남성이 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7’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 중 처가로부터 적극적인 ‘도구적 지원’을 받는 사람의 비율은 2006년 17%에서 지난해 19%로 증가했다. 반면 시가의 도움을 받는 비율은 같은 기간 14%에서 7.9%로 급감했다.



도구적 지원은 양육이나 청소·식사준비·장보기·심부름 등 집안일에 도움을 주는 것을 말한다. 시가보다는 처가의 도움을 받는 집이 늘면서 자연스레 사위가 처가의 분위기에 맞춰야 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셈이다.

2016년 12월 결혼한 직장인 이모씨(31)는 명절이 고된 사위 중 한명이다. 이씨는 처가와 5분 거리에 살고있다. 맞벌이하는 이씨 부부의 집안일은 장모가 도와주고 있는데 명절만 되면 가족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이씨는 "친구 사위들은 어떤 선물을 해줬고 해외여행을 시켜준다는 얘기를 할 때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특히 가족이 모였을 때 평소 생활습관을 가지고 한소리씩 하는데 표정을 관리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명절 연휴에 제사를 지내는 대신 여행을 떠나는 사회적 분위기도 부담스럽다. 지난해 1월 결혼한 은행원 최모씨(35)는 "집에 찾아갈 때보다 여행을 모시고 가는 게 5배는 더 신경 쓸 일이 많다"며 "숙소와 음식, 여행계획 등을 하나하나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지나친 간섭도 갈등의 씨앗이다. 지난해 11월 결혼한 회사원 박모씨(30)는 "애한테 밥 먹이듯 이것저것 먹으라고 강요할 때 부담스럽다"며 "특히 술은 한두 잔밖에 못 하는데 장인어른이 '술을 그것밖에 못 마시냐'고 말할 때는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장인·장모나 사위 모두 서로에게 낯선 새로운 인간관계라는 점을 인정하고 소통하는 것이 갈등 해소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고강섭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장인·장모 등 부모세대가 자녀세대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일방향적 소통에서 벗어나 쌍방향적인 소통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며 "젊은 부부들은 역지사지의 마음을 가지고 각자의 집에서 서로 입장을 잘 대변해주는 소통창구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권해수 조선대 심리학과 교수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사위나 며느리도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해버리면 안 된다"며 "가족이기 때문에 더 존중해주고 개인들의 영역을 보호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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