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명탐정’ 뺨 때리는 조선시대 과학수사

머니투데이 권경률 칼럼니스트 2018.02.10 09:48
글자크기

권경률의 사극 속 역사인물 76 – 명탐정 : 백성의 억울함 풀어준 사람들

‘조선명탐정’ 뺨 때리는 조선시대 과학수사


탐정(探偵)은 감춰진 사정을 은밀히 추적하여 알아내는 사람을 말한다. 옛날에는 정탐꾼이라 하여 스파이에 가까운 뜻으로 쓰였지만, 요즘은 의뢰를 받아 사건을 조사하는 직업으로 통용된다. 영화 ‘조선명탐정’ 시리즈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현대적 의미의 탐정을 등장시켜 장르적 쾌감을 안겨준다. 그럼 조선에도 이런 민간 수사요원들이 있었을까?

물론 조선시대엔 직업 탐정이 없었다. 범죄수사는 어디까지나 관리들의 몫이었다. 형조, 의금부, 포도청, 사헌부와 각급 지방관아에서 법절차에 따라 사건을 처리한 것이다. 특히 강력범죄인 살인사건의 경우 조사와 검시를 여러 차례 진행하며 엄정하게 수사했다. ‘조선명탐정’ 뺨 때리는 유능한 수사관들도 출현했다. 15세기의 문신 이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신 등이 의심하여 민발의 첩 막비의 집에 이르렀는데 뿌려진 피가 벽에 가득했습니다. 또 작은 철창을 찾아 시신의 상처와 맞춰보니 서로 들어맞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석산이 신었던 버선 한 짝이 없어졌는데, 막비의 집 방석 밑에서 찾아냈습니다. 청컨대 민발을 가두고 막비를 추궁하게 하소서.” (세조실록)

1455년, 세조가 조카 단종에게 왕위를 찬탈한 그해 12월에 한양에서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창칼로 잔혹하게 난자한 시신이 발견됐는데 피살자가 종친 이석산으로 알려졌다. 왕실 사람이 살해된 사건인지라 세조는 동부승지 이휘에게 재차 시신을 검시하게 했다. 이휘는 주변 증언을 수집하고 시신 상태를 살펴본 후 공신 민발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조선시대 살인사건의 주된 동기는 치정, 원한, 재산 등이었다. 이휘는 시신의 눈알을 뽑고 음경을 벤 데 주목하고 치정이 얽혀있음을 직감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을 조사해 이석산이 민발의 첩 막비와 은밀히 만났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과연 막비의 집에서 핏자국과 함께 살해도구인 창과 유류품 버선이 나왔다. 빼도 박도 못하는 결정적 증거들이었다.

그러나 이석산의 보고를 받은 세조는 딴청을 피웠다. 정변을 일으켜 왕위에 오른 세조는 거사를 도운 공신들을 무척 아꼈다. 아무리 종친이 살해됐다지만 민발을 처벌하고 싶지 않았다. 세조는 증거들을 무시하고 목격자를 찾아오라고 지시했다. 살해 장소에서 가까운 데 사는 사람들이 끌려왔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설혹 목격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분위기에서 민발이 범인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민발은 풀려나고 진실은 베일에 가려졌다. 왕위를 찬탈한 무시무시한 임금의 뜻이다. 누가 감히 토를 달겠는가. 하지만 이휘는 물러서지 않았다. 세조가 신하들에게 베푸는 술자리에서 다시 이석산 살인사건을 거론했다. 취흥이 올라 춤사위까지 휘젓던 왕이 발끈했다. 그는 관직에서 쫓겨나 유배를 떠나야 했다. 얼마 후 귀양이 풀려 조정에 돌아온 이휘는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가 사육신과 함께 세상을 등졌다.


이석산 살인사건에서 수사관의 소신과 용기가 빛났다면 정조 때 일어난 박 여인 사건의 경우 과학수사가 돋보였다. 1785년 황해도 평산에서 한 부녀자가 목을 매고 칼에 찔려 죽었다. 조씨 일가에 시집간 지 석 달밖에 안 된 박 여인이었다. 지방에서 살인이 의심되는 사건이 발생하면 수령이 현장에 나가 조사와 검시를 해야 한다. 평산부사는 의관과 율관, 오작인(仵作人 : 검시요원)을 데리고 조씨네 집으로 출동했다.

평산부사는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구박을 받다가 자살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다만 시어머니인 과부 최 여인이 평소 남자를 불러들이는 등 행실에 문제가 있으니 처분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덧붙였다. 이어서 이웃한 백천군수가 검증 차원에서 다시 검시를 했는데 결과는 대동소이했다. 그러자 박 여인의 친정에서 들고 일어났다. 남동생이 한양에 가서 정조의 행차를 막고 징을 울렸다. 임금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격쟁이었다.

정조는 이 사건의 재수사를 명하고 20대의 젊은 암행어사 이곤수를 파견했다. 세 번째 검시에서 결과가 뒤집어졌다. 박 여인이 목맨 흔적을 찾기 위해 데친 파 밑동을 찧어 목 부위에 붙이고 그 위에 다시 초를 적신 종이를 덮었다. 그러나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사인은 칼로 목을 찌른 서너 군데 상처 중에서 식도와 기도를 관통한 것으로 판명 났다. 자기 목을 찌른 게 아니라 누워 있다가 찔렸다는 해석이 가능했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조선시대 관리들은 유교경전을 공부해서 관직에 올랐는데 어떻게 살인사건 수사를 펼칠 수 있었을까? 그들에게는 ‘무원록(無冤錄)’이 있었다. 이 책은 법의학에 근거해 수사지침을 제공하는 과학수사의 바이블이다. 사망 원인을 사례 별로 나누어 그 특징과 검시 요령, 범행 수법을 자세히 담았다. 영화 ‘조선명탐정’ 1편에서 쇠못을 머리에 박아 죽이는 수법도 여기 나온다.

박 여인 살인사건에도 이 ‘무원록’이 요긴하게 쓰였다. 그럼 누가 죽였을까? 처음엔 시어머니 최 여인과 간통 상대로 지목된 이차망의 공모설이 유력했다. 하지만 이곤수는 간통을 증언한 조광신이 수상했다. 그는 최 여인의 시조카였다. 다른 친척들은 입을 다무는데 그이만 두 사람을 살인자로 몰고 갔다. 암행어사는 탐문수사를 벌여 진짜 불륜남이 조광신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간통 사실을 박 여인에게 들키자 최 여인과 공모해 살해한 것이다.

정조는 박 여인 사건처럼 재위 중에 일어난 강력사건의 전모를 ‘심리록(審理錄)’이라는 판례집에 남기게 했다. 어쩌면 이 일은 아버지 사도세자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의혹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백성의 억울함이 없도록 하는 게 나라가 할 일이라고 믿었다. 조선의 과학수사 지침서인 ‘무원록(無冤錄)’ 또한 억울함이 없다는 제목을 달고 있지 않은가.
‘조선명탐정’ 뺨 때리는 조선시대 과학수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