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 때리고 따분한’ 일상이 영감의 재료…“나타날 때가지 기다려라”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8.01.20 06:00
글자크기

[따끈따끈 새책] ‘발상’…스치는 생각은 어떻게 영감이 되는가

‘멍 때리고 따분한’ 일상이 영감의 재료…“나타날 때가지 기다려라”


구두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루부탱이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한 마네킹을 관찰하다가 빨간색 밑창을 개발하거나 아르키메데스가 넘치는 물을 보고 진짜 순금이라는 걸 깨닫고 ‘유레카’를 외친 것 모두 ‘영감’이 만들어낸 순간들이다. 영감은 창조의 원천이자 위대한 자아에 대한 포상인 셈이다.

누구나 영감을 꿈꾸지만, 아무나 쉽게 획득할 수 있는 선물은 아니다. 영감은 잠재된 기억일까, 우연한 발견일까.



인간의 뇌는 매일 수만 개의 기억을 머릿속에 저장한다. 하지만 그중 의식적으로 인지한 것만을 장기적 또는 단기적으로 떠올린다. 간혹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고’ 있거나 잠자는 순간, 생각지 못했던 아이디어가 나타나기도 한다. 일상에서 받는 모든 인상이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지만, 그중 대부분은 자동으로 사라지기 일쑤다.

저자는 영감의 원천이 되는 인상을 얻기 위해서는 뇌의 필터링을 의식적으로 극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이때 ‘심오한 관찰’ 능력과 ‘집중적 인지’ 능력과 함께 ‘공상’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목표를 향한 집중력과 해당 목표로부터 벗어나는 생각의 역설적 상호작용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예로부터 모든 문예가와 사상가는 창작 행위의 첫 출발점에서 일상적인 것의 한계를 넘어선 곳, 다시 말해 비상한 것이나 신적인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발상’을 얻을 수 있었다.

영감은 신이 추방당하지 않았을 때 신의 임무였고, 기독교적 구원이 목표였을 땐 천사와 예언자, 사도 또는 공상가들이 생기를 불어넣는 일을 맡았다. 20세기가 마약 문화에 도취했을 때도 영감은 존재했다.

하지만 세련된 디자인과 유행을 따르는 지금 시대에 영감이라는 것은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되고 그 자리는 ‘상상’이라는 현상이 대신하고 있다. 오늘날 예술가들도 직관이나 상상 같은 개념으로 창의성을 누구나 학습 가능한 능력이라고 해석한다. 창조의 과정은 예측 가능한 사고로 효율성이라는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상상은 구체적이고, 영감은 모호하다. 상상은 실행하는 주체 안에서 완성되는 과정이기에 주변과의 상호작용은 뒷전이다. 영감은 주변의 도움 없이 살아남기 어렵다. 영감의 속성이 기다림일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엇인가 나타날 때까지(주변의 상호작용) 어찌 되든 계속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처럼 (고독한) 방랑이나 (암담한) 지루함으로, 마르셀 프루스트처럼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으로, 텅 빈 캔버스 앞의 화가처럼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으로 기다림의 시간을 채우는 일이다.

무심코 지나친 주변의 요소가 영감이 돼 내면에 저장된 기억과 만나면서 번뜩이는 ‘발상’이 탄생하는데, 저자는 이 과정이 반드시 ‘자연스럽게’ 이뤄지지 않고 ‘의도적으로’ 발생시킬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주변 세계가 어떤 자극을 제공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해도 외부 자극이 어떤 식으로든 내적 사고를 유발할 때 영향력은 발휘된다는 것이다.

이때 생각을 준비하는 과정(의도)이 가장 중요한 단계라고 역설한다. 특정한 주제를 사전에 미리 생각하고 기억한다면 그와 관련된 이슈를 다룰 때 실제로 영감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연상, 즉 생각을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도 자신만의 생각을 끌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무한히 변형시키면서 연결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하지만 창작적 영감을 받았다고 해서 결과적으로 역사에 남을 예술이나 학문이 탄생했는지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영감을 받은 작업의 창의성과 결과물에 대한 평가는 오로지 사회가 판단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

책은 역사적 창작물을 탄생시킨 발상과 영감이 머릿속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과학적, 철학적, 문화적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영감이 지난 과거의 가치를 토대로 발상의 개념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싶었다”며 “발상을 잃어버린 시대에 감격과 열정, 빈둥거림과 여유, 따분함과 무료함을 되찾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발상=이리스 되링, 베티나 미텔슈트라스 지음. 김현정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292쪽/1만4000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