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폐관'으로 저무는 한국 연극사

머니투데이 구유나 기자 2018.01.18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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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년대 연극의 메카였던 '세실극장' 폐관…'삼일로창고극장', '게릴라극장' 뒤이어

 7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세실극장에서 관계자들이 무대를 정리하고 있다. 1976년 개관해 연극계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정동 세실극장은 이날 '안네 프랑크' 공연을 마지막으로 42년 만에 경영난으로 문을 닫는다. 건물소유주인 대한성공회 측은 세실극장을 사무실로 운영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뉴스1 7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세실극장에서 관계자들이 무대를 정리하고 있다. 1976년 개관해 연극계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정동 세실극장은 이날 '안네 프랑크' 공연을 마지막으로 42년 만에 경영난으로 문을 닫는다. 건물소유주인 대한성공회 측은 세실극장을 사무실로 운영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뉴스1


1970년대부터 수십년간 한국 연극사를 이끌어온 주요 소극장들이 재정난으로 인해 잇달아 폐관하면서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일부 연극인들은 재개관을 위해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지만 묘안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18일 공연계에 따르면 이달 초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세실극장이 연극 '안네 프랑크' 공연을 마지막으로 42년 만에 문을 닫았다.



세실극장은 70~80년대 국내 연극의 메카였다. 1976년 개관 당시 320석이 구비돼 소극장 중에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근현대 건축 거장인 김중업이 건물을 설계해 건축사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1977년에는 국내 창작극의 출발점이라 볼 수 있는 제1회 '대한민국 연극제'를 개최해 5회 동안 진행했다.

세실극장은 민주화 역사도 함께 했다. 1979년 극장 지하에 문을 연 '세실 레스토랑'에는 운동권 인사들이 모여 기자회견을 열거나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공회 대성당이 일종의 보호막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서울시는 2013년 세실극장의 역사적, 문화예술적 가치를 인정해 미래유산에 지정했다.



하지만 세실극장은 결국 재정난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2012년부터 기업 후원이 끊어지면서 월세 1300만원에 매달 운영비 2000여만원을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김민섭 세실극장 극장장은 폐관을 막고자 민간단체인 서울연극협회에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협회와 소유주인 대한성공회 재단은 월세 등을 놓고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한 상황이다. 성공회 측은 사무실로 활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송형종 서울연극협회장은 "여러 민간 단체들이 합심해 세실극장을 인수하고 이를 특성화 극장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성공회 측에 따르면 아직 재개관 여지가 남아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통 큰 결단을 바라는 바"라고 밝혔다.

 7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세실극장에서 시민들이 공연을 관람한 뒤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사진=뉴스1 7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세실극장에서 시민들이 공연을 관람한 뒤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사진=뉴스1
2015년 삼일로창고극장도 재정 문제 끝에 폐관했지만 서울시의 도움으로 재개관했다. 서울시가 건물주로부터 극장을 임대하고 이를 출연기관인 서울문화재단이 위탁 운영하기로 한 것. 그러나 인력과 예산이 지나치게 많이 투입되기 때문에 다수 극장을 장기간 지속적으로 지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4월에는 혜화동에 위치한 게릴라 극장이 정부 지원금 삭감을 비롯한 재정 악화로 인해 10여년 만에 폐관했다.


연극인들은 소극장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최근에는 재정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극단이 극장을 공동소유하는 협동조합 방식 등도 나타나고 있다. 한 연극 관계자는 "순수예술에 대한 수요가 낮은 상황에서는 모든 게 고육지책일 뿐 획기적인 방안이랄 게 없다"고 한탄했다.

근대 건축물에 대한 좀 더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화재청 등록문화재의 경우 권고 조치와 수리 보조금 지원 등 보다 체계적인 관리 방안이 마련돼 있지만 서울시 미래유산 제도와 마찬가지로 강제성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송 회장은 "연극은 무형이다. 지난 세월 동안 많은 관객들에게 위로이자 영감이 됐다"며 "42년이나 된 극장은 개인의 것일뿐만 아니라 공공의 것이기도 하다. (극장을 운영함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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