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회 귀찮고 돈 아까워"…나도 '관태기'?

머니투데이 한지연 기자 2018.01.04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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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도구적관계 확산에 관계·모임도 비용편익 따져…"공동체 교육 필요"

/삽화=김현정 디자이너/삽화=김현정 디자이너


개인주의 문화가 퍼지고 연고 시스템이 약화되면서 인간관계에 지친 사람이
늘고있다. 새로운 관계를 맺고 인맥을 관리하는데 권태를 느끼는 현상을 일컫는 '관태기'(관계+권태기)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특히 2030 청년층이 새로운 관계 맺기를 꺼리고 '혼밥', '혼술' 을 선호하는 등 관태기 증상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2016년 전국 만 15세 이상 남녀 1만60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토대로 지난해 발표한 '2016 국민여가활동조사'에 따르면 혼자 여가 활동을 하는 사람은 2014년 56.8%에서 2016년 59.8%로 증가했다. 특히 20대 이하는 70% 이상이 혼자 여가 활동을 한다고 답했다. 가족과 함께하는 비율은 2014년 32.1%에서 29.7%로 떨어졌다.

◇인맥관리에 회의…바빠서 챙길 여유도 없어




관태기를 느낀 이들은 인맥 관리에 회의감을 느낀다고 입을 모은다. 회사원 김모씨(26)는 "휴대폰 연락처리스트를 보면 300개가 넘어가는데 사실 연락하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예전에는 연락을 열심히 했지만 지금은 서먹해진 사이가 많은 걸 깨닫고 굳이 먼저 연락하진 않게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하반기 취업을 한 이모씨(24)는 "취업 전에는 능동적으로 내가 만나고 싶은 친구들을 만났지만, 취업 후엔 회식, 신년회 등 수동적인 관계가 많아졌다"며 "무의미한 모임이 연속되며 인간관계에 질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바쁜 현대 생활로 인간관계를 관리할 여유도 없다. 박모씨(28)는 "직장생활로 바빠 사람을 만나기도 지친다"며 "시간이 겨우 나면 쉬기 바쁘다"고 말했다.

◇SNS 관계 선호하고 모임은 비용편익 따져

관태기를 호소하는 사람들은 모임도 비용편익을 따져 갖는 경우가 많다.


고강섭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람들간의 모임이 예전에는 사회신뢰를 바탕으로 했다면 지금은 도구적 관계가 됐다"며 "토익 스터디, 취업 스터디와 같이 목적 달성을 위해 모이고, 본인이 생각한 관계가 아니라면 바로 해체해버린다"고 설명했다. 고 교수는 "공동의 관계를 통한 이익과 시너지보다 개인의 이익이 중요시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면 관계를 꺼리다 보니 언제든 맺고 끊기 쉬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상의 관계를 중시하기도 한다. 정모씨(29)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 취업 스터디를 하고 살빼기 모임을 한 적이 있다"며 "이름과 나이도 묻지 않고, 만나서는 필요한 것만 하고 바로 헤어진다"고 말했다. 이모씨(27)는 "SNS활동을 통해 교류하는 사람이 실제 친구보다 많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SNS 발달로 오프라인에서 인간관계가 필요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온라인 플랫폼이 계속 발달하면 관태기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합리적 시스템 측면에선 긍정적…"공동체 교육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관태기'가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삶의 질 측면에서 사회적 관계의 중요성은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며 "지금 당장 관계를 끊는 것이 편할 수 있지만 길게 보면 단절된 관계 역시 여러가지 비용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학연, 지연 등에 지나치게 얽힌 한국사회의 인맥 시스템을 개선하고 주변 관계를 되돌아 본다는 점에서 관태기의 순기능도 있다.

구 교수는 "연줄 망이 약화되고 합리적 시스템이 확산된다는 측면에서 관계끊기는 긍정적"이라며 "연줄망에 목매는 상황보다 본인의 커리어, 취향, 시간을 중시하게 됐다는 측면에선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개인주의적 시각에서 본다면 관태기는 긍정적 언어지만 역기능을 막기 위해서는 초등·중학생때부터 장기적으로 공동체성 회복에 대한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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