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곡' 'ㅇㅈ' 급식체…"10대 문화" vs "언어 파괴"

머니투데이 한지연 기자 2017.11.19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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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체 확산…"언어환경 변화 자연스러운 현상", "유희적 수단으로만 언어사용 우려"

tvN 'SNL9'에서 개그 코너로 '설혁수의 급식체 특강'을 다뤘다. 배우 권혁수가 유명 한국사 강사인 설민석을 흉내내 급식체에 대해 강의한다./사진=SNL9 캡처tvN 'SNL9'에서 개그 코너로 '설혁수의 급식체 특강'을 다뤘다. 배우 권혁수가 유명 한국사 강사인 설민석을 흉내내 급식체에 대해 강의한다./사진=SNL9 캡처


급식을 먹는 10대 청소년들이 주로 사용한다고 해 '급식체'라는 이름이 붙은 언어가 온라인에서 시작돼 실생활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급식체의 확산을 언어 환경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과 언어 파괴라는 입장이 맞선다.

◇급식체, 인터넷 언어가 유래…유희에 집중
'띵곡' 'ㅇㅈ' 급식체…"10대 문화" vs "언어 파괴"
19일 교육업계에 따르면 2015년 무렵부터 메신저 소통을 하며 나온 축약형 언어, 인터넷 방송 BJ가 사용하는 말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쓰이던 게임 용어들이 10대들에게 은어처럼 퍼져나가면서 '급식체' 또는 '휴먼급식체'라 불리는 언어가 생겨났다.



급식체는 △발음이 비슷한 단어를 연결해 말하는 것 △초성만을 이용해 대화하는 것 △글자를 바꾼 언어 유희 등으로 이뤄진다. '에바쎄바쌈바디바 참치넙치꽁치삼치갈치'와 같이 의미를 전달하지 않지만 발음이 비슷한 단어들을 묶어 사용한다. 생김새가 비슷한 자음과 모음을 바꿔 '명곡'을 '띵곡'으로, '멍멍이'를 '댕댕이'로 부르는 것은 야구 갤러리에서 사용하던 '야민정음'이 퍼져나간 것이다.

초성만으로 대화하는 것은 고전 '급식체'다. 'ㅇㅈ?'은 '인정?' 'ㅇㄱㄹㅇ'은 '이거레알'(진짜)'이다.



급식체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해 동의를 요구하고, 더 나아가 자문자답을 하는 경우도 많다. '인정?'이라며 상대방에게 자신이 한 말의 동의를 구하는 말은 '린정?'이 됐고, 이것이 '린정? 어, 린정', '동의? 어, 보감' '용비? 어, 천가' 등 스스로 묻고 답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하는 부분'과 '~하는 각'(~ 할 것 같다)은 인터넷방송 BJ의 말투와 게임 '리그오브레전드'의 사용자들이 쓰던 말에서 유래했다.

◇언어 환경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10대 문화의 하나

급식체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전한 언어 환경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 청년층은 급식체를 용인하는 분위기다.


미디어 회사에 근무하는 김세리씨(24)는 "시대의 한 흐름이라고 생각한다"며 "도덕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는 말이 아니라면 급식체도 급식체 나름대로 10대 문화의 하나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급식체를 모르면 트렌드에 뒤쳐진다는 느낌도 든다"고 덧붙였다.

이모씨(24)는 "한글을 파괴한다는 입장도 있지만, 한글에 관심이 있으니 변형해서라도 쓰는 것"이라며 "말할 권리 인정 차원에서 급식체도 충분히 수용가능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부정적 뜻 가진 급식체 많아…명백한 언어파괴
/사진=SNL9 캡처/사진=SNL9 캡처
급식체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많다. 급식체라는 말 자체가 10대 청소년들을 비하하는 단어인 '급식충'에서 시작된데다가, 포르노 영상에서 유래한 '앙, 기모띠', 어머니를 비하하는 '느금마'(너의 어머니) 등 부정적 유래를 가진 말들이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학교 3학년 권모양(15)은 "21명의 같은 반 친구들 중 반 이상이 실생활에서도 급식체를 사용한다"며 "또래인 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말도 많고 계속해서 들으면 기분이 나쁘다"고 말했다.

박영진씨(25)는 "친근하게 말하는 사이에서 가끔 장난스럽게 사용하는 것은 괜찮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등 과할 경우 눈살이 찌푸려진다"고 말했다. 주부 신모씨(52)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겠고, 들으면 짜증을 유발한다"며 "왜 좋은 말을 놔두고 언어를 파괴하는 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김형주 상명대 국어문화원 특임교수는 "급식체 사용은 언어 환경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인 동시에 언어 파괴"라며 "결국 또 새로운 환경이 등장하면 사라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김 교수는 "한글을 좋은 방향으로 창의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유희적 수단으로만 사용한다는 점이 우려된다"며 "중요한 것은 급식체 자체가 아니라 이를 사용하는 청소년들 의식인데 언어를 관계발전의 도구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말하기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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