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미국은 라라랜드로 남을까

머니투데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2017.10.02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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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역사에 길이 남을 해프닝이 벌어진 시상식이다. 반 세기 전인 1967년 작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보니와 클라이드였던 페이 다너웨이와 워렌 비티가 시상자로 나와 라라랜드가 작품상을 수상했다고 발표했다. 라라랜드 팀 모두가 단상에 올라 수상 소감을 발표하고 기뻐했다. 그러자 단상이 약간 어수선해지면서 놀랄 일이 일어났다.

수상자인 라라랜드 제작자가 마이크에 대고 ‘수상작은 문라이트다. 농담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는 수상자가 적힌 봉투 안의 카드를 높이 흔들어 카메라에 보였다. 과연 거기에는 문라이트가 수상자로 적혀 있었다. 얼떨떨한 문라이트 팀이 단상으로 올라와 수상소감을 말하는 순서가 뒤 따랐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워렌 비티는 애초에 엉뚱한 봉투를 받았던 것이다. 거기에는 ‘여우주연상 라라랜드의 엠마 스톤’이라고 적혀있었는데 비티는 어리둥절해서 발표를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다너웨이가 라라랜드가 눈에 들어왔던지 라라랜드라고 말해 버린 것이다. 이 봉투는 회계법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가 준비한다. 그런데 담당자가 엠마 스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데 정신이 팔려 실수를 했던 것이다.

어쨌든 모든 사람들이 겸연쩍게 되었다. 라라랜드 팀은 말할 것도 없고 문라이트 팀도 뭔가 2% 부족하게 되었다. 꼭 남의 상을 뺏은 것 같은 기분도 들었을 것이다. 사회자인 지미 킴멜은 모두 자기 잘못이라고 했으나 킴멜이 잘못한 것은 없다. 스티븐 콜베어가 나중에 꼬집었다. 흑인 팀에 상을 주기 싫으니 백인 팀이 먼저 만져라도 본 다음 넘기기 위해 일어난 일이라고.



다행히 개인이 수상하는 카테고리가 아니었기에 충격이 덜했을 뿐이다. 러셀 크로우가 남우주연상으로 발표되어서 기쁨에 넘친 수상소감을 이야기 했는데 갑자기 덴젤 워싱턴이 진짜 수상자라고 정정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면 어땠을까. 문라이트는 물론 수상 자격이 있는 훌륭한 작품이다. 그러나 라라랜드가 수상했어도 아무런 이의가 없었을 것이다. 킴멜이 혼란한 와중에 그러면 둘 다 상을 주자고 즉흥 농담을 했다.

라라랜드는 LA를 가리키는 말인 동시에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닿을 수 없는 곳을 가리키는 말이다. 해마다 무수히 많은 청춘들이 레스토랑 종업원에서 시작해서 대스타가 되는 꿈을 안고 LA와 할리우드로 모여든다. 라라랜드는 성공담이기 때문에 흔히 인종차별과 범죄 등 부정적인 이미지로 묘사되는 LA와 할리우드에 대한 보기 드문 장밋빛 묘사이기도 하다. LA에서는 영화의 각 장면을 찍은 장소를 따라 도는 라라랜드 투어도 유행이다.

라라랜드는 세월이 흐르면서 때가 되어 서서히 사라지는 아름다운 것들을 끝까지 놓아주지 않으려는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할리우드의 역사를 수놓은 주옥같은 고전 뮤지컬들이나 재즈음악이 그런 것들이다. 특히 이제는 소멸되어 가는 흑인 음악인 재즈를 백인 주인공인 라이언 고슬링이 되살렸다는 점이 돋보인다. 킴멜은 시상식 서두에서 2016년은 백인이 재즈를 가르치고 흑인이 나사를 살린(‘히든 피겨스’) 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최근에 트럼프 대통령이 촉발시켰던 미국의 인종주의 논란이 북핵 문제로 소강사태인 듯하다. 미국의 백인우월주의자들도 신나치는 지지하지 않는다. 그런데 트럼프가 신나치조차 수용하는 듯한 발언을 했던 것이다. 다수의 공화당 의원들과 대기업 경영자들이 트럼프에게 등을 돌렸다.

지금은 NFL 무릎시위가 화제다. 독자들에게는 미국의 인종주의 문제를 가장 잘 그린 2006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영화 크래쉬(Crash)를 권한다. 미국이 미국인들의 마음속에 영원한 라라랜드로 남을 수 있을지 더 지켜보아야겠다.

김화진 서울대 법대 교수김화진 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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