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업에 5000자…'자소설' 백일장 된 자소서

머니투데이 남궁민 기자 2017.09.26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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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스펙' 흐름에 자기소개서 중요성↑…질문·답변 길이 모두 늘어 부담

김현정 디자이너김현정 디자이너


"하루에 만 글자는 기본이에요. 처음 자기소개서를 쓰기 시작할 땐 필력이 부족하다 생각했는데, 하루에 몇천자씩 매일 쓰다보니 이젠 체력이 모자라네요." (취업준비생 박모씨)


주요 기업의 하반기 채용이 시작되며 취준생들의 '자기소개서 전쟁'이 시작됐다. 최근 블라인드 채용이 확산되고 정량적 스펙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면서 자소서가 채용 경쟁의 승부처로 떠오르는 것. 하지만 취준생들 사이에서는 자소서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덩달아 문항이 길어지고 난이도도 높아졌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26일 국내 기업 및 채용업계에 따르면 9월 중 공고를 낸 주요 기업 가운데 무작위로 10개 기업의 입사지원서를 확인해 본 결과 절반인 5개 기업의 자소서 분량이 4000자를 넘었다. 최대 8000자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취업준비생 박지영씨(25)는 "취준생들 사이에선 3000자 정도면 짧다고 할 만큼 자소서 분량이 너무 많아졌다"며 "한 기업만 쓰는 것도 아니고 열댓개 기업을 쓰고나면 진이 빠진다"고 말했다.



기업 채용 담당자들은 꼭 규정된 분량을 채워서 쓸 필요는 없다고 조언한다. 한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자소서 문항의 분량은 '상한'일 뿐 그만큼 쓰란 말은 아니다"라며 "분량이 짧더라도 핵심을 짚은 글을 쓰면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조언했다.
취업 관련 학원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사진=뉴스1취업 관련 학원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사진=뉴스1
하지만 합격이 절박한 취준생들은 적은 분량의 자소서를 선뜻 내기가 쉽지 않아 양을 채울 수 밖에 없다고 호소한다. 취업준비생 최모씨(27)는 "1000자, 500자 이렇게 써 있으면 불안한 마음에 일단은 다 채워 쓸 수 밖에 없다"며 "동기, 가정환경을 묻는 질문에 1000자를 맞춰 쓰려다보니 없는 말까지 지어내 '소설'을 쓴다"고 하소연했다.

자소서 분량 뿐 아니라 질문의 난이도도 높아지고 있다. 지원동기나 성장배경 등 단순한 질문이 주를 이뤘던 과거와 달리 보다 구체적인 상황이나 질문을 제시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난 3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30대 그룹의 입사 자소서 질문의 글자수는 73자로 파악됐다. “좋아하는 아티스트(그룹/솔로, 장르무관)를 선정해 소개하고, 그의 성공·실패요인에 대해 본인의 생각을 작성하시오"와 같은 구체적인 질문이 많아져 취준생들은 진땀을 빼고 있다.


취업준비생 안모씨(29)는 "'탈스펙'이 대세라곤 하지만 스펙준비를 안할 수도 없고, 자소서, 인적성 부담은 오히려 커져 준비가 더 힘들어졌다"며 "정책, 트렌드가 바뀔수록 취준생들 부담은 늘기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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