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중요한 것은 한가롭게 시를 읽으면서 감상할 마음의 여유도 넉넉하게 갖지 못하는 현실인데,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시인의 “독선적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너절하게 이미지들을 늘어놓고 독자들에게 의미를 찾아내라고 강요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이 생각해 낸 것이 짧은 시이고 일곱 줄의 시라는 것이다.
일곱 줄이면 몸에 밴 눈물도 죄다 빠진다
나머지는 껍데기다 그 이상은 주절주절
떠나기 싫어 괜히 다시는 입맛일 뿐
홍수 난 눈물에 빠져 죽기 싫다면
다섯줄에 끝내는 뒤끝이 아름답다
피곤한 독자들도 가서 쉬어야 하므로
아쉽고 섬섬한 두 줄을 여백으로 세운다
- ‘일곱 줄 시’ 전문
불러야 할 이름들이 생각나질 않았다
갑자기 ‘어이’라는 소리 밖에는
그 얼굴에 합당한 기호가 그려지지 않아
머뭇거리는 사이에 그는 뒤가 멀어졌다
불현 듯 뒤를 남기고 멀어져 가는 사람들이
다 떠나고 말았을 때 내게 남은 이름도
구멍 난 양말처럼 길섶에 버려져야 했다
- ‘호명’ 전문
어느덧 노경에 든 시인은 이렇듯 “불러야 할 이름들이” 금방 생각나지 않는다고 한다. 나이 먹어감의 특징이다. 그러는 사이에 상대는 멀어져가고 잊혀 간다. 이렇게 상대가 다 떠나고 말았을 때 시인에게 남은 이름도 헌 양말처럼 길섶에 버려져야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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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명이 곧 존재라는 말이다. 시 ‘백담사 가는 길’에서 화자의 어머니는 생전에 “백담사를 벽담사라 불렀다”고 한다. 화자가 아무리 백담사라고 고쳐 주어도 벽담사로 부르는 화자의 어머니. 결국 어머니는 백담사가 아니라 자신이 늘 부르던 벽담사를 통해 피안에 이른 것이다.
시인은 자신이 창안한 일곱 줄의 시에서 존재론적 문제뿐만 아니라, 현실과 사회정치적 문제를 담아내기도 한다. 시 ‘노숙인’을 통해 노숙자의 슬픔을, ‘사월청춘’에서는 맹골수도에서 죽은 세월호 희생자들을, ‘귀 없는 원숭이’에서는 국정농단 청문회 모습을, ‘망향가-정신대’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형상하고 있다.
◇붉은 색들=강영환 지음. 책펴냄열린시 펴냄. 128쪽/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