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위기의 패션업계, 콧대 낮추고 '가치' 올릴 때

머니투데이 배영윤 기자 2017.09.0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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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이례적으로 패션 시장 분석과 자사 주요 브랜드의 하반기 전략을 설명하는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신규 브랜드 론칭이나 새로운 사업을 소개하는 것도 아닌데 출입기자들을 대거 초청한 연유가 궁금했다. 국내 패션시장이 수년간 정체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업계 선두 기업으로서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감에 마련한 자리였다.

삼성패션연구소에 따르면 2010년 국내 패션 시장 규모는 전년대비 7.3% 성장해 30조원을 돌파했다. 이듬해 11.8% 증가하며 성장가도를 달리는가 싶더니 2012년 1.6%의 저조한 성장률을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까지 5년간 1~3%대로 제자리걸음이다. 올해도 지난해(2.4%)보다 소폭 줄어든 2.1% 성장에 그칠 전망이다.



시장 규모는 제자리인 반면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글로벌 브랜드, SPA(제조·유통 일괄형) 브랜드, 온라인 기반 중소 브랜드 뿐만 아니라 백화점과 대형마트들의 PB(자체브랜드)까지 가세해 기존 패션 브랜드들의 설자리는 좁아졌다.

소비자들은 옷 사는 데 더욱 까다로워졌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의식주(衣食住) 중 가장 먼저 지갑을 닫는 곳은 '입는 것'이었다. 꼭 사야한다면 조금 더 저렴한 쪽에 눈을 돌렸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의 제품은 외면을 받았다. '노세일'(할인하지 않는) 정책도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전략이던 패션업계도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앞세운 '생존 경쟁'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생존 경쟁에서 도태된 브랜드는 가차없이 사라졌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을 비롯해 LF, 신세계인터내셔날 등 주요 패션 대기업들도 경쟁력 없는 브랜드에 과감히 칼을 댔다. 20년 넘은 브랜드도 철수했고 백화점 채널만을 고집하던 브랜드는 온라인 전용 브랜드로 탈바꿈했다. 그 와중에 '있어 보이는' 옷 대신 명확한 '브랜드 아이덴티티'(정체성)을 구축한 브랜드들은 오히려 성장했다.

패션업계는 여전히 생존 경쟁 중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가격은 낮추거나 유지하면서 독창적인 소재와 디자인 개발 등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데 많은 역량을 쏟아 붇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변방'에 불과했던 'K패션'도 조금씩 의미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콧대는 낮추고 각 브랜드의 진정한 가치를 높이는 것. 패션업계가 지금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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