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고가공원의 그림자…노점상의 '눈물'

머니투데이 이보라 기자 2017.08.21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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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들 "매대 크기↓, 위치 바뀌어 장사 안 돼"…방문객, 日 12만→2만으로 뚝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앞 노점상들./사진=이보라 기자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앞 노점상들./사진=이보라 기자


18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앞. 식음료 노점상인 송모씨(68)는 일을 시작하기 위해 노점 가리개를 위로 올렸다. 송씨는 "남대문시장 상권이 한풀 꺾인 지 오래됐지만 상황이 더욱 안 좋아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5월 서울시가 남대문시장 근처 서울역 고가도로를 '서울로 7017'이라는 공원으로 만든 뒤 송씨의 매출은 급감했다. 하루 20만원 수준에서 5~7만원으로 뚝 떨어졌다. 재료비 등을 빼면 먹고살기 어렵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약 2시간 동안 송씨가 판 것은 1000원짜리 식혜 한 잔이 전부였다. 고가도로 공원이 인근에 있지만 인적은 뜸한 편이었다. 두어 번 정도 길을 물으러 오는 외국인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음료를 사주지 않았다.

송씨의 벌이는 고가도로가 있을 때가 좋았다. 송씨는 "예전엔 고가도로를 타고 왔다 갔다 하던 오토바이 기사들이 음료수를 많이 사 마셨는데 지금은 다 사라졌다"고 말했다.



남대문시장 앞에서 구제 의류를 판매하는 노점상 박모씨(60)도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박씨의 노점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횡단보도에서 다소 떨어진 외딴 거리에 놓여 있었다. 고가도로 공원이 조성되면서 구청 지시로 횡단보도 인근에 있던 매대를 이곳으로 옮겨야 했다. 매대 크기도 가로 2m·세로 1m에서 가로가 1.5m로 줄었다.

박씨는 "예전 위치가 장사가 잘 됐는데 지금은 하루에 몇 만원 벌기도 어렵다"며 "아픈 아들과 함께 둘이 살아가고 있는데 월세 내기도 어려워 하루하루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고가 공원의 시작은 화려했다. 개장 직후만 해도 하루 이용객 수가 많게는 12만명을 웃돌며 청계천을 잇는 서울의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남대문시장 상인과 노점상들은 죽었던 상권이 회복되리란 희망에 부풀었다.


하지만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시멘트 바닥에 균열이 생기며 안전 문제가 부각됐고 폭염에도 그늘이 부족해 이용객 수는 하루 2~3만명으로 뚝 떨어졌다.

노점상들은 오히려 생계가 막막해졌다고 주장한다. 이용객이 감소했을 뿐 아니라 서울시가 공원화를 진행하면서 노점상들을 함께 정비했기 때문이다. 공원 방문객들의 통행 불편을 줄이기 위해 노점 매대 크기를 축소하고 노점 위치를 옮기게 했다. 노점상들로서는 그만큼 물건을 진열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다니는 목 좋은 위치에서 쫓겨난 셈이다.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전경./사진=이보라 기자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전경./사진=이보라 기자
남대문시장 점포 상인들도 고가도로 공원에 시큰둥하다. 장신구를 파는 송동춘씨(45)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중국 관광객이 줄어 매출이 반 토막 난 상황에서 고가도로 공원에 기대를 걸었었다"며 "하지만 여름철에 그늘도 제대로 없는 공원을 찾는 사람이 없다 보니 장사에 도움이 안된다"고 말했다.

상인들과 달리 서울시는 고가도로 공원이 장기적으로 남대문시장 상권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서울시청 관계자는 "고가도로 공원에 요즘도 하루 평균 2~3만명이 모인다"며 "노숙인 관리와 도로 정비 등을 같이 하면서 상권 가치가 올라갔다"고 밝혔다.

상인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아직 공원이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돼 상권 활성화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전반적으로 경기가 안 좋다 보니 상인들이 공원에 큰 기대를 가졌을 텐데 생긴 후에도 매출이 안 오르니 실망감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는 노점상에 호의적 정책을 펴고 있다는 입장이다. 중구청 관계자는 "노점상 실명제로 노점상을 합법화하면서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며 "매대를 옮기게 한 건 통행에 불편이 있다는 민원 때문에 행정지도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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