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내보내자…놀이 정책 '칸막이'부터 없애야

머니투데이 대담=김익태 사회부장, 정리=진달래, 방윤영 기자, 사진=임성균 기자 2017.08.03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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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놀이가 미래다, 노는 아이를 위한 대한민국] 전문가 대담 내용 전문 ②

편집자주 2~3살짜리를 위한 사교육이 등장했다. 유치원때 한글은 물론 영어 학습도 기본이다. 초등학생부터는 학원에 시달리는게 일상이다. 시간이 있어도 만만치 않다. 공공시설이나 프로그램이 부족해 놀이도 비용이다. 어느덧 우리 아이들에게 '놀이'는 사라졌다. 반면 선진국들은 점점 놀이에 주목한다. 잘 놀아야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자란다는걸 깨달은 결과다. 특히 자율과 창의, 융합이 생명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놀이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우리 사회의 미래와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놀이의 재조명이 절실하다.

7월12일 서울 종로구 머니투데이 본사에서 열린 [창간기획-놀이가 미래다, 노는 아이를 위한 대한민국] 대담에 참가한 전문가들/사진=임성균 기자7월12일 서울 종로구 머니투데이 본사에서 열린 [창간기획-놀이가 미래다, 노는 아이를 위한 대한민국] 대담에 참가한 전문가들/사진=임성균 기자


놀 줄 아는 어른이 없다. 한국 아이들이 놀이를 뺏긴 현실을 두고 전문가들이 내놓은 분석이다. 놀이의 가치도 방법도 잘 모르는 부모, 선생님, 정치인, 공무원 등 어른들 사이에서 아이들은 '놀이'를 잃었다. 이대로 우리 사회는 괜찮을까.

지난달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 머니투데이 본사에 빈약한 국내 아동 놀이 상황을 우려하는 각계 전문가가 모였다. 머니투데이 기획기사 '놀이가 미래다, 노는 아이를 위한 대한민국'이 두달여에 걸쳐 전한 영국, 핀란드, 호주, 미국, 독일 등 5개국의 아동 놀이 현실을 토대로 우리의 문제점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의했다.



이날 대담은 김익태 머니투데이 사회부장이 사회를 맡았다. 전문가 토론자로는 김명순 연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 김수현 참교육학부모회 팀장, 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대리, 채은화 서울 서대문구 육아종합지원센터장, 최윤종 서울시 푸른도시국장이 참여했다. 다음은 대담 내용 전문이다.


▶(김 팀장)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아이들이 놀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부모는 안전 걱정에 아이들을 밖으로 보내지 못하고 지자체도 노력하지만 잘 안된다. 해결 방법은 지자체와 교육청, 학부모 사이에 놓인 칸막이를 치우고 얘기하는 법을 찾는 거다. 영국은 놀이 정책을 채택하면서 국가 차원에서 이 칸막이를 모두 치웠다.



영국이 2007년 국가 정책으로 '놀이'를 다뤄 깜짝 놀랐다. 전 세계 경제 위기가 한창일 때였는데 놀이정책을 도입한 데 대해 굉장히 놀랐다. 영국 4개 주가 통합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추진한 것도 그렇다. 서울 등 각 지자체가 많이 애쓰고, 몇몇 부모들도 애를 많이 쓴다. 그런데도 밖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으면 신고 전화가 온다. '아이가 왜 이렇게 방치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문제 있는 것 아니냐는 거다.

교육청도 교과 과정 외 요구가 들어오면 부담스러워 한다. 교육과정 안에 놀이를 설치한다는 것도 의미 있지만 놀이는 교육과정 안에서 해결할 수 없다. 놀이의 기본 에너지는 자발성이기 때문이다. '언제, 뭐하고 놀지, 놀이를 언제 끝내지' 이것을 결정하는 건 반드시 아이들이어야 한다. 이게 '놀이의 자발성'인데 교과 과정은 그게 안 된다.

▶(김 교수) 사회적 인식 부족은 결국 국가 정책으로 푸는 방법이 제일 효과적이다. 영국은 놀이 정책을 펼 때 아이가 어디 있는지를 먼저 봤다. 첫 번째가 학교와 어린이집, 유치원이다. 두 번째는 공원이다. 공원을 단순하게 먹고 마시는 곳으로 보지 않고 공개된 공간에서 어떻게 놀이를 하게 만들 것인지 고민했다. 세 번째는 놀이전문가를 양성해서 키워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네 번째는 '스트리트'(street·거리) 개념이 들어왔다. 아이들이 나오는 곳이 거리다. 그래서 거리를 막고 놀이 공간을 만들었다. 영국은 이 4가지를 고려해 정책을 만들었다.


놀이를 교육과정에 넣기는 어렵다. 영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은 수업 사이 즉, 쉬는 시간에 (아이들을) 실내에 못 있게 한다. 아이들을 모두 내보내는 것이다. 쉬는 시간을 길게 갖는다. 결론적으로 아이들이 충분히 바깥에서 놀고 오면 학업 성취도도 높아진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보니 핀란드 부모들은 영하 25도보다 낮은 날씨가 아닌 이상 무조건 아이들을 바깥으로 내보낸다. 영국은 학교 시작하기 전과 학교 끝난 후, 수업 중간 시간에 놀 수 있게끔 한다. 아이들이 또래들과 놀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의 정책이 돼야 한다.

학교에서는 놀이터를 만들게끔 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공공·국공립 어린이집이 많지 않은데 그 이유가 실외 놀이터를 못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실외 놀이터가 없어도 인가를 내주는 곳이 있다. 영국은 아이들이 있는 곳에는 우선 실외 놀이터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둔다. 그리고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까지 고려한다. 또 공원 내 놀이시설을 창의적으로 만들어주고 이 정보를 부모가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해준다. 놀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정보를 많이 준다.

호주도 그렇다. 공원에 놀이터를 만드는 것뿐 아니라 '놀이훈련가'를 많이 키워서 곳곳에 아이들이 잘 놀 수 있도록 전문적인 도움을 준다. 거리를 막아서 아이들이 놀 장소를 만들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학교는 공간과 시간을 주고, 그래도 못 논다면 전문가들을 투입해서 더 잘 놀 수 있도록, 질적으로 우수한 놀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성인, 사회, 국가가 해줄 수 있는 것을 생각해서 포괄적 정책을 만든 영국 사례가 인상 깊다.

7월12일 서울 종로구 머니투데이 본사에서 열린 [창간기획-놀이가 미래다, 노는 아이를 위한 대한민국] 대담에 참석한 김명순 연세대학교 아동가족학과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사진=임성균 기자7월12일 서울 종로구 머니투데이 본사에서 열린 [창간기획-놀이가 미래다, 노는 아이를 위한 대한민국] 대담에 참석한 김명순 연세대학교 아동가족학과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사진=임성균 기자
▶(제 대리) 정부가 정책으로 '놀이 개념'을 만든 게 정말 중요하다. 아이들의 '놀이 자발성' 때문이다. 한 설문조사에서 아이들은 놀이를 '자유'라고 한다. 반대로 어른은 '재미'라고 정의하더라. 아이들은 재미가 있든 없든 자유로우면 '잘 놀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영국 정부 정책이 이를 담아 놀이 개념을 정의한 부분이 제일 좋았다.

지자체와 거버넌스를 만드는 과정도 의미가 있다. 중앙 정부가 정책을 만드는 게 끝이 아니다. 실제 예산이 어떻게 지자체로 가고, 지자체는 어떤 세부 기구를 만들어서 예산을 사용하는지 거버넌스가 만들어지니까 한 두 해를 넘어 10년도 갈 수 있는 힘이 됐다.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여지를 (영국 국가정책이) 만들어 준 점도 말하고 싶다. 민간에서는 예산 때문에 시도하기 쉽지 않은 '모험 놀이터'나 '자연형 놀이터'를 정부 예산으로 특별 시범사업을 벌이기도 한다. 심지어 학교를 평가할 때 놀이를 기준으로 넣는다. 우리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놀이를 어떻게 제공하는가'를 평가 기준으로 삼은 것은 혁신적이다. 이 부분을 그대로 베끼기는 어렵지만 충분히 공부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최 국장) 우리나라에서는 놀이를 관장하는 중앙 부처가 없다.

▶(김 팀장) 작년에 하기로 했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문재인 정부는 자세한 공약이 없다.

▶(김 교수) 놀 권리만 (집중적으로) 말했다. 놀이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영국은 다양한 이론과 연구를 종합해 논문을 (많이) 냈다. 놀이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먼저 인식(개념)을 잡아줬다.

▶(김 팀장) 핀란드는 이미 자연스럽게 해왔으니까 그런 것일까? 왜 영국부터 (놀이 정책이) 시작됐을까?

▶(김 교수) 영국에서는 예전부터 학교 가기 전 아이끼리 놀 수 있도록 하는 '플레이그룹'이라는 자발적인 부모 단체가 많았다. 아이를 혼자 놀게 하면 심심하니까 플레이그룹을 만들어서 돌아가면서 같이 놀게 하는 식이다. 이게 하나의 어린이집이 되며 발전해왔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아이들을 놀게 해야 한다는 생각은 원래 있었다. 공간 등이 필요하다 보니 이렇게 정책이 만들어지게 됐다.

▶(제 대리) 각국마다 상황이 다르겠지만 놀이의 중요성이 문화로 잡힌 곳은 아무래도 정책도 세부적으로 보게 된다. 유엔협약에 나오는 놀 권리에서는 놀이정책을 얘기할 때 국가 역할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은 굉장히 파편화돼 있다. 보건복지부가 주무부처인데 여성가족부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 학교 놀이는 교육부가 담당하고, 놀이터 설립은 국토교통부와 지자체, 안전은 안전행정부가 책임지는 식이다.

▶(김 팀장) 그래서 이 칸막이를 거두고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다른 나라는 놀 권리를 침해당해보지 않았다. 영국은 영화 '나, 다니엘 브레이크'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위기를 겪었다. 경쟁사회로 가면서 급속도로 퇴행하는 경험을 했다.

우리나라는 더 심각한 '세월호' 사건을 겪었다. 사회 밑바닥을 드러낸 사건이다. 세월호는 우리 사회 아동·교육 정책에 경종을 울렸다. 일반 아이들이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교사들도 그렇게 컸다. 선생님이 '내가 책임질테니 다 올라가라'고 했던 반 아이들은 다 살았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육이 과연 그런가.

우리는 유럽처럼 넓지 않고 안전하게 동네에서 놀던 사회다. 학교 가기 전에 놀이 발달이 자연스럽게 됐다. 또래 그룹이 동네에 만들어지고 그 그룹이 학교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런데 동네에서 그 그룹이 어느 순간부터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자체와 교육청간 연계가 필요하다. 학교는 놀이 발달 공간이기도 하다. 여태까지는 학교에서 '왜 놀아?'라고 했지만, 교육의 경계를 무너트려 놀이야말로 큰 배움이고 도구이자 목적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런 합의가 이뤄졌으면 좋겠다.

▶(채 센터장) 최근 영국 교육청이 놀이에 대한 사이트를 열었다. 부모들에게 놀이 기초 개념과 놀이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 등을 알려준다. 사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인터넷 정보를 잘 흡수한다. 이런 것을 정책적으로 공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서울시는 작게나마 지역 놀이터 정보를 모아서 '우리 동네'라는 일종의 지자체 소식지를 만든다. 1년에 한 번 배부한다. 어머니들이 돌아다니면서 '이 놀이터는 어디에 있고 무슨 기구가 있는지' 등 간단한 정보를 모은다. 서울시가 정책적으로 자치구마다 하도록 하는 사업이다. 놀이 가치에 대한 정보를 중앙정부에서 알리고 지자체도 이를 부모들에게 전달해준다면 그들도 적극 참여할 것이다.

▶(김 팀장) 놀이를 한 아이 중심으로 '노는 아이인가, 아닌가' 식으로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면 놀이 경쟁력으로 간다. '놀이성'이라는 말이 있으면 또 엄마들은 우리 아이는 잘 노는지 '놀이 지능'이 높은지를 따지면서 또 다른 성적표를 낸다. (일동 웃음) 놀이가 또 학원 가방 바꿔 들기가 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그렇게 전락할 위험이 있다.

▶(김 교수) 그런데 (놀이에는) 유머, 재미가 들어있어서 성적으로는 안된다. 놀이성 항목체크가 어렵다. (웃음)

▶(김 팀장) 후진국은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어서 아이들을 내버려 두니까 알아서 논다. 선진국은 국가적으로 놀게 한다. 우리만 예외적인 경우다. 놀이 관련 책을 보면 한국이 나쁜 사례로 많이 나온다. 우리나라 공동체 지수가 최하위인 것과 '놀이 박탈'은 같이 간다. 혼자 놀 수 없다. 미끄럼틀을 5분 타다가 집에 가는 건 놀이가 아니다. 놀이를 하는 건 사회 공동체지수를 높이는 것과 같다.

'놀이터 함께 만들기 약속'이라는 서울시 정책을 보면 '동네 가장 좋은 곳에 놀이터를 만들겠다'고 한다. 이런 것이 놀이의 가치다. 이런 기조 없이 돈 들여서 놀이터를 자꾸 만드는 것은 위험하다. 멋진 놀이기구를 만들어 놓고 놀이 방과 후 교실, 놀이 동아리 등 이벤트 형식으로 하면 안된다.

영국의 '플레이워커'(놀이 전문가)는 전승자가 아니다. 안전한 놀이를 돕고 아이의 자발성을 조절해주는 사람이다. 공동체가 놀이 전승의 주체가 돼야 한다. 국가 정책에서 해야 할 것이 그것이다. 아이 몇 명을 모아놓고 선생님을 두면 안된다. 아이들에게 놀이를 가르치는 순간 또 하나의 과목이 된다. 아이가 놀이에서 멀어지게 된다. '유사놀이'의 나쁜 점은 아이에게 본능적으로 놀이가 나쁘다는 생각을 심어준다는 데 있다. 놀이수업은 안 했으면 한다.

▶(최 국장) 영국 사례인 플레이스트리트를 우선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 영국처럼 국내에도 어린이 공원을 새로 만들기는 쉽지 않다. 일정 구역을 어느 시간대에 막고 아이들을 놀게 하는 거다. 우리도 실험을 많이 해봤다. '움직이는 놀이터'라고 빈 공간과 폐쇄된 공간에 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다. 토요일 혹은 방과 후에 풀어놓고 '놀아보자'하는 것인데 (아이들은) 참 잘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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