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 모양과 유사해 군함도로 불린 일본 하시마섬의 현재 모습.
지난 25일 왕십리 CGV에서 열린 영화 '군함도' 특별시사회. 일제 강제 징용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시사회에 초대된 구연철씨(86)가 군함도에 대해 이 같이 표현했다. 그는 9살에 징용된 아버지를 따라 군함도에 가서 15살까지 그곳에 있었다. 군함도라 부르는 것조차 거부감이 든다던 구씨의 모습은 일제강점기 상처로 얼룩진 실제 역사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일본 나가사키항에서 약 18km 떨어진 군함도의 본명은 하시마(端島)다. 좁은 섬에 아파트 등 고층 건물이 빽빽히 들어선 모습이 마치 군함처럼 보인다고 해서 군함도로 불렸다. 1810년 어부가 석탄을 발견한 뒤 1890년대부터 미쓰비시가 해저에 있던 석탄을 캐내기 시작했다. 동서 160미터m, 남북 480m, 둘레 1.2km, 면적 0.063㎢에 불과한 작은 섬이었다.
하시마섬 탄광에서 일하는 조선인 노동자들./사진=국가기록원
증언과 사료를 통해 알려진 하시마 해저 탄광은 생지옥이었다. 20세도 안된 어린 소년들이 많았는데, 좁다란 굴에서 일하기 용이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낮은 막장에서 거의 눕다시피한 자세로 하루 10시간씩 석탄을 캐냈다. 탄광 온도는 45도를 넘나 들었고 유독 가스가 수시로 나와 가스 폭발 사고의 위험도 컸다. 열악한 작업 조건과 영양 실조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고, 일부는 탈출을 감행하다 익사하거나 붙잡혀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조선인 근로자가 탄광 벽에 쓴 낙서./자료=영화 '을사년의 매국노' 촬영 중 연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