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속 도로 보수하다 숨졌는데…죽음도 '차별'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17.07.22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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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도로보수 중 숨진 무기계약직원, 순직 인정 못받아…"평등권 위반"

집중 호우로 충남 예산군 예산읍 산성리 지하차도가 물에 잠기자 지난 4일 예산군 직원들이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다./사진제공=뉴스1집중 호우로 충남 예산군 예산읍 산성리 지하차도가 물에 잠기자 지난 4일 예산군 직원들이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다./사진제공=뉴스1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충북 청주지역에서 14시간씩 도로 보수 작업을 하다 숨졌지만 공무원이 아닌 무기계약직이라는 이유로 순직 인정을 못받은 도로보수원의 안타까운 소식에 관련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무원과 동일한 공무를 수행하다가 같은 상황에서 숨졌음에도 공무원은 공무원연금법을 적용해 순직으로 인정하고 비공무원은 업무상 재해중 사망으로 처리하는 것이 평등권 위반이자 차별이라는 지적이다.



2001년 채용된 충북도 도로관리사업소 도로 보수원 박모씨(50)는 지난 16일 오전 7시 비상소집령을 받고 청주시 내수리에 있는 지하차도로 출동했다. 차도가 막혔으니 배수로를 뚫어달라는 민원 때문이었다. 그날 하루만 290밀리미터(㎜)의 폭우가 쏟아질 정도로 작업 환경은 열악했다.

양수 작업을 해도 침수가 반복되는 악조건 속에서 박씨는 아침과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작업을 이어갔다. 출동한지 10시간여 만에 가까스로 길을 뚫었지만 이날은 퇴근하지 못하고 늦은 저녁식사를 한 뒤 대기했다. 저녁 8시30분 현장에 투입된 뒤 밤 9시가 다 돼 작업을 마쳤다.



하지만 작업을 마치고 차 안에서 옷을 갈아입은 뒤 그제서야 쉬던 박씨는 의식을 잃었다. 사인은 심근경색. 묵묵히 일을 잘하던 박씨의 죽음에 동료들은 할말을 잃었다.

박씨가 폭우 속에서 도로를 보수하는 공무를 하다 숨졌지만 '순직' 인정은 받지 못했다. 그가 공무원 신분이 아닌 무기계약직이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공무 도중 사망할 경우 '공무원연금법' 적용을 받아 순직 인정이 된다. 반면 무기계약직 도로보수원인 박씨는 비공무원으로 '산업재해보상법' 적용을 받기 때문에 '업무상 재해 중 사망' 처리가 된다.

공무원 재해보상을 주관하는 인사혁신처는 현행법상으로는 박씨가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순직 인정을 할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무기계약직이라고 해서 보상을 못 받는 것이 아니고 산업재해보상법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며 "공무원과 각기 다른 사회보장체계에서 보상을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때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참사 당일 숨진 세월호 교사 9명 중 정규직 교사 7명만 순직 인정을 하고 기간제 교사인 김초원·이지혜 교사는 순직 인정을 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문 대통령이 직접 지시를 한 뒤에서야 두 교사의 순직이 인정됐다.
15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내 한 납골공원에 안치된 세월호 참사 희생 기간제 교사인 고 김초원 교사의 추모함에 카네이션이 달려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기간제 교사 2명(고 김초원, 이지혜)의 순직을 인정하는 절차를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2017.5.15/뉴스115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내 한 납골공원에 안치된 세월호 참사 희생 기간제 교사인 고 김초원 교사의 추모함에 카네이션이 달려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기간제 교사 2명(고 김초원, 이지혜)의 순직을 인정하는 절차를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2017.5.15/뉴스1
이에 대해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공무원 연금법 시행령 개정으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기간제 교사도 공무원연금법 대상이 된다는 근거를 만든 뒤 순직 인정을 한 것"이라며 "그 외 기간제 교사의 경우 똑같이 돌아가셔도 현행법으로 순직 인정이 안된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동일한 공무 수행으로 인해 사망했음에도 각기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차별이라고 강조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 때도 교사들이 동일하게 아이들을 구하다 사망했는데 기간제 교사의 순직 인정이 안됐던 건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 위반"이라며 "최소한 죽음에 있어서는 차별을 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현행법상에서도 박씨와 같은 무기계약직 근로자가 순직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있다고 덧붙였다. 인권위 관계자는 "공무원 연금법 시행령을 보면 인사혁신처장이 규정하는 사람은 정규직 공무원 외에도 공무원으로 볼 수 있다고 돼있다"며 "무기계약직 근로자도 국가 사무를 위해 채용한 것이기 때문에 이 조항에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씨의 순직 인정을 추진하기 위해 충북도도 인사혁신처에 건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시종 충북지사는 "폭우 속에서 도민 안전을 위해 일한 점을 고려하면 순직으로 인정해 예우해야 한다"며 "무기계약직도 공무원에 준하는 대우를 받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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